독서기록/종이책

[독서 기록/감상] 김금희 - <복자에게>를 읽고.

디디_dd 2020. 12. 15. 17:13

 

 

 

 

 김금희 작가님에 대해서는 마음산책에서 나온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라는 짧은 단편들을 모아놓은 소설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집 근처 도서관에서 <경애의 마음>을 대여해 읽으려고 시도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끝까지 완독하지 못했다. 당시에 전직장에서 그리 좋지 못한 이유로 퇴사를 하고 난 후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기라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책을 인내를 거쳐 읽었더라면, 작가님의 다른 책들 뿐 아니라 다른 책도 많이 읽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괜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복자에게>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 그리고 간단한 책 소개를 읽었을 땐 사실 '제주'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진 몰라도 굉장히 '힐링'이 되는 그런 소설이 아닐까라고 단순하게 떠올려 보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이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는 것... 내가 처음 이 책에 대해 떠올린 이미지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책이었기에 책 내용을 알고 난 후엔 내가 읽지 않고 혼자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고, 결코 가볍지 않고 묵직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주인공 화자인 '이영초롱'은 어린 시절 찾아온 가난 때문에 제주도 '고고리섬'의 보건소에 근무중인 고모에게 맡겨져 뜻밖의 제주 생활을 하게 된다. 서울에서 제주, 지금 시각에서 보면 공부, 학원에 지친 서울 초등학교 아이가 제주에서 뛰놀며 공부할 수 있겠거니 하며 쉽게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부터 몇십년 전의 일이기에 어린 영초롱이 느끼기엔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부모와, 친구들과 떨어져 제주도에서도 한번 더 배를 타고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섬에서의 시간들. 그때 만난 고고리섬의 '복자'가 영초롱의 친구가 되는데, 이때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둘은 멀어지고 영초롱은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사법고시를 패스해 판사가 되어 우연한 계기로 제주지법으로 발령이 나고 그런 후 다시 복자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이 소설은 1인칭 화자인 영초롱의 이야기로 이루어지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읽으면 읽을수록 '복자'와 '고모'가 어떤 마음인지 그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게 된달까. 그들이 화자인 소설이 나오면 또 새롭겠다는 생각도 곁가지로 뻗기도 했다. 영초롱이 어린 시절 지켜본 고모는 밤이 되면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는데, 그 편지를 몰래 훔쳐 읽는 어린 영초롱. 후에 고모가 괴로워했던 이유인 어떤 사건의 재판 기록을 외울 듯이 머리에 되뇌는 것. 그리고 복자가 현재 얽힌 한 사건 재판에 본인이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며 이에 개입하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에서, 영초롱의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복자와 고모의 마음까지 일인칭 화자의 마음에서 이해하고 싶었달까. 소설이 진행되면서 등장인물 하나 하나에 마음을 쓰게 되었기에 든 생각인 것 같다.

 

 읽으면서 평생을 수도권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던 나는 사투리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이해한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뭔가 오독이면 오독인 채로 두고 싶어서 소설에 나오는 사투리 대화에 대해 검색해보지는 않고 혼자 이해한 채로 뒀다. 뭔가 그래도 될 것 같은 소설이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건 어린 시절의 영초롱은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물론 어린 아이이므로 친구 관계에 있어서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속으로 생각하는 마음들이 너무 어른스러워서 안타까웠다. 뭔가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안돼. 하는 마음이 있는 아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달까. 특히,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아버지의 사업이었던 자판기의 동전 사건도 인상적이었고, 그 외에도 종교에 대한 생각들. 그런 것들이 특히 와닿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울린 여러 문장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기억에 남기고 싶은 몇 문장을 남기며 감상을 마친다.

 

 

 

 [문장 기록]

 

 

 나는 영웅에게 "성당에 가면 신부님이 주로 어떤 축원을 하시지?" 하고 물었다. 영웅은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지었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 슬퍼할 줄 아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올바른 것을 위하다 힘들어진 사람, 그런 사람들이 다 복을 받는다 하시지. 그런데 나는 그런 게 싫다. 거짓말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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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걱정은 너무 하지 마. 할망을 꼭 닮았으니까. 복자네 할망은 고고리섬에서 본 어떤 사람보다도 강한 해녀였어. 제주 속담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청에 가느니 바다로 간다'는 말이 있다. 복자네 할망에게 들었지.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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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할망 있잖아. 생각해보면 나는 할망 앞에서 가장 씩씩했다. 왜 그런지 알아?"

 "할망이 너를 아꼈으니까 그랬지."

 "그래, 그도 그런데 우리 할망이 물질을 오래해서 귀가 안 좋았잖아. 그래서 크게 크게 소리를 질러서 말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다보면 마냥 우울하고 슬플 수가 없었어. 할망! 나! 슬! 펏! 저! 소리치고 나면 슬픔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듯하고 그냥 숨 한번 크게 쉬고 나면 괜찮은 듯하고. 할망이 늘 그랬거든, 우리 벨 같은 손주 물숨 쉬지 말고 나가서 바깥 숨을 쉬어라. 어떻게든 너는 본섬도 가고 육지도 가고." 

 

 

 <복자에게>라는 소설은 나에게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느껴지는 대사 하나가 없이, 하나 하나 가슴에 와닿고, 가슴에 새기고 싶은 여러 문장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문장을 기록하며 감상을 마친다. 언제라도 또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나 행복했다는 말을 끝으로 감상문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