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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08 [독서 기록/감상] 양귀자 - <모순>을 읽고.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
 
 대학교 재학 시절,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지만 우연한 계기로 이 책을 알고, 읽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흐릿하지만 아마도 1학년 2학기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처음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시작하고 적응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타지 생활과 대학 생활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던 터여서 그랬는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마치 주인공 '진진'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결의 서러움과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 이 책을 접하고 '나의 인생 소설이 무엇인가?'를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 책이라고 말 할 정도로 이 책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고는 까마득히 잊고 바쁜 일상을 살다가 얼마전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바로드림으로 구입하게 된 양장본 <모순>.
이 책을 읽으면 마치 10년 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의 나와 '진진'의 삶, 결국 나의 이제까지의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게 되기에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도록 구입하게 되었다. 표지가 하얀색이라 때가 탈까 두렵기도 하지만 어쨌든 때가 타더라도 내 것이니까. 예전에 읽었던 버전에서도 장의 구분이 이렇게 세세하게 되어있었는지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이 책을 기준으로 말하면 장의 구분이 확실하고 그 장 안에서의 주요한 구절을 왼편에 적어주어 독자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게 참 마음에 드는 지점이었다. 먼저 왼편의 구절을 읽고, 그 장 안에서 그 구절이 나오는 부분을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총 17장과 작가 노트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며, 왼편의 구절을 필사하고 그 장 안에서 나오는 부분의 페이지를 메모했는데, 소설 안에서 보다는 약간 요약하여 실은 부분도 있고 완벽히 같진 않았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양장본의 띠지에 적힌 글귀. 친구에게 이 책을 추천했을 때, 친구가 이 구절이 너무 마음에 남았다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소설이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가슴에 겹겹이 쌓이고 쌓인다. 여태 많은 소설책을 읽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처럼 '필사'를 직접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소설은 처음이었다. 읽는 이의 상황,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지만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인생에 어떤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조언을 얻고 그로인해 조금의 위안이라도 받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덤덤하게 그렇지만 무심하지는 않게 모든 것을 그렇게 써내려간 글을 읽다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던 책. 주인공 '진진'의 가족 이야기를 위주로 소설이 진행되지만, 그 와중에 '진진'의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도 균형을 이루어 주인공의 환경과 그가 하는 생각들을 차분하게 파악할 수 있고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에 대해서도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지만) 왠지 모르게 다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이랄까. 이런 어영부영한 설명보다는 사실 이런 걸 다 떠나서 한번 읽어보면 지금 내가 적어가고 있는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책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이 내가 살았던 (살고 있는) 시대와는 달랐지만 책에 공감하고 몰입하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그때는 이런 방식으로 연애를 했겠구나. 이런 식으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겠구나. 하며 누군가의 추억에는 이러한 일들이 가득할지도 모르겠네. 라는 식의 여러 생각과 공감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 전체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좋은 계기를 남긴 책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에 나오는 유행가 가사와 필사해둔 구절 중 기억에 남는 몇 구절만 남기고 이 글을 마친다.
 
이현우 - 헤어진 다음 날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닌가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수 없이 길어요
어제 아침에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수 없나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수 없이 길어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올수는 없나요

날 사랑 날 사랑 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문장 기록]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21p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127p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188p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268p

Posted by 디디_d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