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을 사서 읽은지는 꽤 되었지만 뒤늦게나마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후기를 남기고 싶었던 계기는 단순하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단막극 형식의 드라마에서 좋아하는 소설집 속 단편을 각색하여 방영하였기 때문인데, 특히나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어 좋아하는 강말금 배우가 장류진 작가님의 소설집 속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의 '거북이알'역을 맡아 연기한 것까지 나의 취향을 완벽하게 만족한 책이기 때문이다.
잠시 책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강말금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정식으로 개봉하였을 때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GV가 취소되어서 안타깝게도 직접 배우님을 만나뵐 수 없었고 당시 시리즈온으로 다운받아 집에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추후에 재개봉했을 때 롯데시네마에서 2020년 12월 1일에 진행되었던 GV 시사회에서 직접 강말금 배우님과 김초희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도 기억에 많이 남은 부분이 있었다.
평소 KBS 드라마 스페셜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영화와 단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드라마는 시리즈이기 때문에 완결이 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챙겨서 봐야하지만(그래서 보통 끌리는 드라마가 있을 경우 모두 완결이 난 뒤에 한번에 몰아보는 방식으로 본다), 단막극이나 단편 소설의 경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즉 기다리지 않고도 결론까지 한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런 이유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총집합체이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아서 후기를 쓰게 되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우선 제목에서부터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 누군가라도 모두 느끼고 있을 감정이기에 어떤 이야기를 할까, 뭔가 내가 평소에 요즘 흔한 각종 자기계발서 혹은 에세이의 제목을 볼 때 뭔가 노골적으로 소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최소한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느낌은 적중했다.
단편 하나 하나를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억지로 슬픔을 쥐어짠다'거나 '억지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서 좋았다. 평소 여러가지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면서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그런 소설이었다. 피식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가끔은 가슴을 콕하고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나의 상황과 비슷한 면모도 많아서 공감대 형성이 너무나 잘 되어서 술술 읽혔다.
특히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라는 단편은 내가 후쿠오카 여행을 두번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유후인, 오호리 공원 등 다녀온 관광지 이름도 익숙하고 혼자 유후인 온천에 가겠다고 아침부터 버스를 3시간 이상 타고 노천 온천에 가서 몸을 담구고 그 온천에서 천천히 걸어내려 오면서의 그 고즈넉한 풍경이 되살아나는 듯한 사실 소설의 내용 전개와는 크게 관계가 없어 그런 부분을 차치하고서 그저 개인적 경험이 있는 익숙한 지명이 나왔을 때의 기쁨이 합쳐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여러 단편 중 나의 가슴을 울렸던 단편은 단연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이었는데, 대학교 때 졸업을 미루고 자취를 하면서 혼자 인적성/필기 시험을 보러 멀리까지 대중 교통을 이용해 다니던 그 길들, 백한번째 이력서를 돌린 끝에 결정된 첫 면접에서 떨려서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슬프면서도 그런 노력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에 일조를 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도움의 손길>이라는 단편에서 가장 공감되면서도 오래 두고두고 기억하고플 문장을 남기며 이 감상글을 마치려 한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본인의 인생을 한번 되돌아보고 싶은 직장인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기에 추천하고 싶다.
[문장 기록]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고 패브릭 소파와 소파스툴, 원목 거실장과 몬스테라 화분은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거실을 통해 부엌으로 가려면 한가운데로 가로지르지 못하고 발뒤꿈치를 들고 피아노의 뒷면과 벽 사이로 겨우 지나가거나, 기어서 피아노 밑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여태까지 단 한번도 충분하다거나 여유롭다는 기분으로 살아본 적 없는 삶이었다. 삼십대 중반, 이제서야 비로소 누리게 된 것들을 남은 인생에서도 계속 안정적으로 누리며 살고 싶었다. 이십평대 아파트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 '도움의 손길' 142-1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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