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인 오늘 돌이켜보니 11월에는 다른 달보다 유난히 영화를 많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3번의 GV와 2번의 자발적 영화관 나들이. 11월은 말할 것도 없고,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고 마음을 알싸히 울렸던 영화를 하나 꼽자면 바로 이 영화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한국 영화 중에선 <남매의 여름밤>을 통해 느꼈는데, 외국 영화 중 꼽자면 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2020년이 다 지나가진 않았지만 감히 꼽자면 바로 이 두 편의 영화가 나에겐 올해의 BEST OF BEST 였다.

 

 영화에 대한 기본 정보도 없이 사실 끌리는대로 시네마톡을 예매하고, 일요일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극장에 방문했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보아도 좋지만, 어느 정도는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시네마톡으로 예매했기에 해설을 들으며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GV가 아닌 영화만을 감상하는 입장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두면 좋을 것을 정리해보았다.

 

 -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 조지아는 과거에 그루지아라고 불렸다.

 - 흑해 연안 국가로 굉장히 복잡한 역사를 지닌 국가이다.

 - 이슬람과 동방정교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다. (기독교 80% 이상, 이슬람교 대략 10%)

 - 아르메니아와 접경하며, 두 나라의 종교는 동방정교로 같다.

 - 구 소련 연방 국가이며, 대표적으로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 인물이다.

 - 독립하는 과정에서 소련 연방 중 '반 러시아'의 노선을 택하게 된다.

 - 그와 반대로 아르메니아는 '친 러시아' 노선을 택하게 된다.

 

 GV에서 언급된 조지아라는 국가의 역사적 사실은 이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조지아 최초의 LGBTQ 영화로, 이 영화를 검색하면 '프랑스, 스웨덴' 영화라고 나오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촬영은 조지아에서 진행했고 감독도 조지아 출신 스웨덴인이나, 투자 자본의 출처로 국적 분류를 하게 되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동진 평론가는 작년에 개봉한 <경계선>이라는 영화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국적 분류가 된 영화라고 하셨다.)   

 

 영화 속 등장하는 댄스 코치의 대사들은 대부분 '조지아 전통춤은 이래야 한다(동작이 못처럼 꼿꼿해야 한다, 처녀의 순수함을 강조해서 춰라)'라는 민족 정체성을 유난히 강조하며, 남성-여성의 역할 또한 정형화 시키는데, 주인공 메라비는 이와 정확히 반대로 느껴지는 남성성을 과하게 표현하기 보단 그와 반대로, 그리고 국가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정형화된 춤이라기 보다 영화의 엔딩으로 갈수록 그와 반대인 사적인(개인적인) 춤으로 표현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는 볼수록 <브로크백 마운틴>의 조지아판처럼 느껴진다고 하면서 몇가지 예시를 드셨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옷'이라는 모티브가 일단 떠오른다.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의 옷이 엔딩 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또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땐 사회적인 맥락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적이고도 폐쇄적인 맥락 안에서의 사랑을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느끼기에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나 색감 그리고 배우의 느낌(?) 등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르기도 하나, 그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인 맥락과는 별개로 그들 간의 사랑이 강조된다면 이 영화는 전통/역사/보수/폐쇄 등의 억압으로 사회 안에서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금단(?)의 사랑을 떠오르기 하기에 나는 <브로크백 마운틴>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떠올려보자면, 첫번째로는 왠지 모르게 형인 데이빗과 이라클리의 관계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둘이 대화하는 장면조차 한 장면도 없지만, 메라비와 이라클리가 사랑을 속삭일 땐 형인 데이빗과 한 방에 있을 때라는 것과 메라비가 처음으로 이라클리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인 연습실에 함께 가게되는 것 등의 맥락에서도 형과 이라클리가 전날 술을 마시고 난 후 같이 집으로 왔기 때문이라는 것. 형의 서사는 추후에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라클리와 형인 데이빗도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든다. (GV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걸 듣고 너무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이라클리는 형인 데이빗에게도 끌리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메라비는 이라클리와 달리 자신의 성지향성을 모르고 있던 채로 이라클리를 만나지만, 이라클리는 자세한 서사가 등장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본인의 성지향성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형에게 끌렸다가 점점 메라비에게 끌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두번째론 메라비와 메리의 서사에서의 왜인지 모를 감동 포인트가 여럿 있었던 것. 메리는 어렸을 때부터 메라비와 파트너를 이루며 춤을 춰왔던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인데, 둘의 관계가 사랑과 우정 그 사이 어딘가를 지나올 때 변화를 겪는 메라비를 지켜보며 곁에 있는 메리의 행동들이 유난히 가슴에 남았다. 처음엔 본 무용단의 '자자'가 동성애를 들키곤 무용단에서 쫓겨나게 되어 결국 수도원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탈출해 몸을 팔게 되는 사연을 알곤 메라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면 안된다고 화를 내기에 이르지만 결국 데이빗의 결혼식에서 먼저 뛰쳐나온 메라비를 붙잡곤 이해하지 못했음을 사과하고 엔딩 씬 (오디션 씬)에서 메라비의 춤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 까지의 둘의 서사가 클리셰라고 생각되지만, 결국 클리셰여서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가슴에 오래 남을 듯 하다. 결국 이 영화는 메라비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지만, 메리 또한 성장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허은실 시인님께서 마지막 5분 간의 엔딩씬. 이라고 언급하실 때, 그게 5분이었다고? 5분보다 정녕 짧게 느껴졌을 정도로 몰입감이 MAX였던 마지막 엔딩씬. 발목을 다쳐 불편한 상태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라클리의 옷을 입고 오디션에 참여해 이라클리와 함께 2인무를 추는 듯 혼자서 본인만의 세계에 빠져 춤을 추는 메라비를 진심으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댄스 코치에게 이라클리가 오디션에 참여 하냐는 질문을 하고,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아뇨. 참여할 거 에요. 하던 메라비의 눈빛. 단호함. 그리고 수선이 필요해보이는 오래된 옷을 입고 등장해 전통춤을 본인만의 해석을 가미해 멋지게 추는 메라비. 아주 아주 오랜만에 여러 번 영화관에서 N차 관람하고픈 영화를 만나서 기쁜 마음으로 글을 이만 줄인다.

Posted by 디디_dd :

 

 

 우선, 2월 말에 <빈폴> 시네마톡을 마지막으로 80여일만에 다시 재개된 시네마톡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격이었다. 끝도 없을 것만 같았던 이 긴 시간이 결국 끝나고, 극장에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매번 현장을 고집하는 나에게 영등포라는 거리적 제약, 퇴근 후 달려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오랜만의 시네마톡에 대한 열망을 이기진 못했다.

영화는 보는 내내 미소 짓게 만드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함과 그 안에서의 여러 묵직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가벼운 듯 보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영화였다. '성지향성'과 '성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되는 나이인 주인공 로레가 그저 '톰보이'적인 성향을 가진 소녀로 자라날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성정체성 자체를 '남성'으로 인식하고, 앞으로 그러고 싶은지에 대한 것. 그리고 동네 친구 '리사'와의 관계에서 성립된 성지향성에 대한 문제. 두가지 차원에서의 고민과 함께 가는 영화이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내내 감독님의 개봉 당시 인터뷰를 언급하며, 셀린 시아마 감독 자체도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 그것들에 대해 에둘러 표현했다고 이야기 했고, 이를 명확히 하는 장면이나 내용은 내가 느끼기에도 없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있다'라고 판단한 것 자체가 관객이 느끼는대로 판단한 것이기에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우선, 말미에 언급하신 'TOMBOY'라는 영화 제목 자체에서 감독의 이 영화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는데,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제목을 사용했다. 사실 영화 제목 자체와 포스터의 주인공 사진을 보면 대략적으로 이 영화가 어떠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데, 그 판단에서 프랑스 영화라고 프랑스 단어를 사용했으면 감독의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영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프랑스어로 톰보이를 뜻하는 단어인 garçon manqué는 남성형 형용사 '사내아이 같은'이라는 뜻을 가진 garçon과 남성형 명사 '결함, 공백'이라는 뜻을 가진 manqué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 단어 자체가 주는 중립적이지 못한 의미를 제목으로 차용할 수 없어 톰보이라는 영어 제목으로 개봉하게 된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와 연관지을 수 있는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생각이 되었다.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느껴지던 세심함, 디테일적인 면모가 여기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우선 동생 역의 잔이 언니와 함께 식탁에서 '미카엘'이란 소년의 이야기를 나눌때 서로만 나눌 수 있는 감정을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그 장면이 가장 사랑스럽기도 했고, 뿐만 아니라 주인공 로레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내심 기쁘기까지 했다. 그리고 집 안에서 동생과 놀아줄 때 동생이 언니의 얼굴을 그리도록 가만히 모델이 되어주는 장면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장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자매가 자매를 그려줄 때 나오는 둘만의 연대 의식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포스터 속의 씬이기도 한데, 너무 좋아서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포스터 한장을 고이 잘 챙겨왔다. 조만간 벽에 예쁘게 걸어 놓을 생각이다.

 

 

영화에서 초반에 리사가 로레에게 이름을 물어볼 때, 새로 이사온 친구에 대한 호기심에서 묻는 장면과 마지막에 그래서 넌 대체 누구인데? 하는 진심을 담은 궁금증에서 비롯된 네 이름이 뭐야? 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에서 '나는 대체 누굴까?' 하는 로레의 성에 대한 고민이 물음에 담겨있고 이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본인이 가진 정체성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로레 마음 안에서 함께 성장 중인 미카엘과 로레. 어떤 선택이든 그것이 로레의 마음을 덜 상처받게 하는 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파란 후드티', 파란 원피스', '파란 벽지', '핑크빛 줄에 달린 열쇠 목걸이', '빨간 수영복', '빨간 상의', '핑크빛 발레복'.... 등등 주인공들 곁에 있는 색의 의미 또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디테일한 요소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색을 떠올리면 어떤 특정 성을 떠올릴 수 있다는 우리가 가진 편견을 정조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파란색의 원피스는 로레와 엄마의 타협점이라고 언급하셨을 때, 최대한 아이의 의견은 존중하되(파란색) 기성 세대가 가진 편견(원피스, 치마)을 포기할 수는 없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었을 것 같다. 결국 이 원피스를 벗어 숲에 걸어두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장면 또한 눈 앞에 생생한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20일만에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는 영화에 대한 법률이 엄격하여 배우인 아이들을 '방학' 기간에 딱 20일 간 빠르게 찍어내야 했다는데, 이런 퀄리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만큼 시나리오 작성 단계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대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연기를 하는데 있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연기해야 하는지 꼼꼼히 지도했다는데 20일만에 가능한 것인지 신기하기도 했다.

나의 소녀 시절은 어땠는가 하는 질문과 누구나 한번쯤 해볼 수도 있을 성지향성과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잔잔하지만 결코 잔잔하지만은 않은 여러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좋은 영화였다.

특히 보는 내내 즐거운 이모 미소를 띄울 수 있게 해준 잔 역할의 말론 레바나양의 천진난만한 연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Posted by 디디_d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