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빛원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1.05.22 [독서 기록/감상] 환상의 빛 - 미야모토 테루 (송태욱 역)

 

 

 



우울할 땐 우울한 책을 읽어서 우울함을 극복하는 나. 사실 항상 우울함 같은 건 내 인생에서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지니고 가야할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편이라 보통 우울한 내용의 책을 잘 선택하고는 하는데, 책을 읽고 그 우울감이 극복이 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환상의 빛>을 감상하기 전 책을 먼저 읽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고 영화를 봤을 때 약간의 실망감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책을 뛰어 넘는 어떤 것을 기대하기에는 책이 가진 그 특유의 개인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떤 것들이 나는 더 좋았기 때문인데, 영화에는 상영 시간의 한계로 책의 모든 것을 담기에 부족한 면도 있기에 불리한 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좋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책으로 <환상의 빛> 꼭지를 감상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렇다고 영화가 말도 못하게 별로이거나 한 것은 아니니 영화와 책을 둘 다 감상할 예정이라면, 영화를 보고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책 안의 내가 좋아한 몇 장면이 영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첫 번째로는 재혼을 위해 떠나는 길에 조선인 '한씨'를 만난 장면이 뇌리에 오래 남았기 때문에 영화에서 계속 그 전송 장면을 찾았지만 없었다. 한씨가 우메다에서 하차 하지 않고 아이들 둘의 손을 잡고 '나'와 유이치를 오사카까지 전송하며 마지막에 안지 십년만에 처음으로 찡긋 웃어준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그 전송과 웃음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들과 동물원 가는 길에 '나'와 아들을 마주친 한씨와 한순간에 옅게나마 연대하게 된 그 순간이 기억에 남았다. 플랫폼에서 '나'를 마주쳤을 때 '나'의 표정이 어땠을지를 한씨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게 되었기 때문일까. 단순히 남편을 잃은 자를 향한 연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에 남는 건 '나'가 어렸을 때 살던 곳에서 할머니를 잃어버리고 끝내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를 죽인 건 그 집 식구일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 집의 바닥을 모두 파헤치는 장면이다. 다다미를 들어내고 바닥을 파는 순간의 가족들 각각의 마음이 어땠을지에 대해 상상했다. 책에는 일인칭으로 '나'의 생각이 이어지는데, 이때 '나'는 가족들이 사실은 할머니가 어딘가에서 죽었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 '나'가 하는 생각들이 너무나 처연했기에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본인의 남편이 어떤 이유에서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다른 사람과 새 삶을 꾸려야 하는 '나', 그녀가 남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처연하고 슬프고 또 우울한 분위기에서 맥락이 이어지지만 중간 중간에 꼭 그렇지만은 않은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슬픔에 잠식되어 있지만 결국엔 새로운 삶에 적응되어 가는 '나'가 남편에게 보내는 메시지.

왜 그랬을까?를 쫓지만 사실 그 이유는 남편만이 알고 있다.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럴 때가 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글이다. <환상의 빛> 뿐 아니라 이 단편집 안의 모든 단편이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 사이의 일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단편은 <침대차> 였는데, 실제로 내가 이 침대 형식의 기차를 여러번 타봤기 때문에 느껴졌던 여러 공감되는 부분과 주인공이 회사 내에서 겪는 일들이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더 와닿았던 편이다.

오사카에서 도쿄로 출장을 가게되는 주인공이 신칸센 예매 시간을 놓쳐 어쩔 수 없이 저녁에 출발하는 침대차를 타게 되어, 같은 칸에 탄 한 노인을 마주하고 그 노인은 사실 어렸을 때 본인이 겪은 어떤 '죽음' 관련된 사건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분이었고 그 사건을 액자식으로 다루고 그 일에 대해 노인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또렷하게는 알 수 없어도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삶이 지난하게 이어지는 것에 대해 어떤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우울하기 때문에 이러한 류의 소설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뭔가 일본 특유의 정서 같달까. 중/고등학교 때 푹 빠져 읽었던 일본 소설 특유의 그 느낌을 회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 <환상의 빛>에서 채워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느낀 사람이라면 원작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게 느꼈던 문장을 기록하며 후기를 마친다.

 



[문장 기록]

저는 눈을 감고 세 사람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터널 나가야 시절부터 소소기의 어촌으로 돌아온 긴 시간의 변천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신을 잃어버린 슬픔은 저 자신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이상한 것으로, 그것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억측이 미치지 못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발을 동동 구를 만한 분함과 슬픔이 가슴속에 서리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함과 슬픔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을 위한 각별한 노력이나 궁리를 한 것도 아닌데 다미오 씨와 도모코는 이제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유이치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키구치 집안 사람이 다 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뒷모습에 말을 거는 것으로, 위태롭게 시들어버릴 것 같은 자신을 지탱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가 비쳤습니다. 아아, 이것이 불행이라는 것이구나, 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느덧 꾸벅꾸벅 졸며 따뜻한 바다에 떠 있는 기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십몇 년 전 경찰이 집의 다다미를 들추고 방바닥을 판 날,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을 때의 그 신기한 안도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친 바다가 울부짖는 소리도, 덧문이 심하게 흔들리는 서리도, 비 개인 레일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도 멀리 밀쳐두고 깊은 안도감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 '환상의 빛' 79-81p

대체 무슨 생각에서 다미오 씨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확실히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력이라든가 정신력이라든가 하는 그런 표면적인 게 아닌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의 마음에는 이 소소기 바다의 그 한순간의 잔물결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봄도 한창이어서 짙은 초록으로 변한, 거칠어지기도 하고 잔잔해지기도 하는 소소기 바다의 모습을 저는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자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환상의 빛' 81-82p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보는 그 사람일 뿐이다. 그가 자살한 이유 또한 알 수 없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가 자살한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끝내 그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자살할 만한 이유는 살아남은 사람이 스스로가 납득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를 온전히 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말 169p

Posted by 디디_d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