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동진의 라이브톡 100회는 <홀리모터스>였고, 그게 2020년 3월 3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니 거의 1년 조금 넘게 만에 드디어 100회를 볼 수 있었다. 비록 중계관에서 중계 화면으로 본 것이었지만 그래도 기념비적인 날이니 기록으로 남겨두려한다.
최초에 <홀리모터스>는 압구정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티켓이었는데 자동으로 취소가 되더니 결국 환불. 그 후로 나는 <홀리모터스>를 보지 않았다. 심지어 시리즈온을 통해 다운로드까지 받아두었는데 왠지 손이 가지 않는달까. 극장에서 직접 듣는 해설이 좋아서 아껴둔 영화라서 그런가보다. 유투브에 무비썸TV 채널을 통해 평론가님의 2시간짜리 평론이 있으니 언젠가 집에서 혼자 보고 평론까지 연달아 보면서 나홀로 GV를 여는 것으로 아쉬움을 해소해보는 것으로.
언제나 그렇듯 영화 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처음 이 영화는 기획 당시 주연인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이 영화의 원작 <노마드랜드>의 영화 판권을 갖고 영화 감독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보통의 영화 제작 방식과는 크게 다른데, 원래 감독이 배우를 소위 '픽'하지만 이 영화는 배우가 감독을 '픽'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전작인 <로데오 카우보이>를 보고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을 영화 주인공으로 세워 이다지도 좋은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 감탄하여 그녀에게 제안했고, 감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본인의 연출 방식에 맞게 책을 각색하여 대본을 완성하였다.
먼저 이 영화는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맡은 펀 역과 데이빗 스트라탄이 맡은 데이브 역을 제외하곤 모두가 실제 '노마드' 생활을 하고 있는 비전문 배우이다. 심지어는 영화 구성 첫 단계에서는 원래 펀과 데이브는 없었고, 책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만을 갖고 찍으려고 했으나 클로이 자오 감독이 프란시스 맥도맨드 배우에게 직접 출연하는 것을 제안하며 새로운 인물을 구성해낸 것이다. 책에 나오는 실제 노마드들의 이야기를 듣는 역할과 그녀가 노마드 생활을 하면서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필요한 중요 인물인 데이브를 구상해냈다. 그 둘 외에는 모두 실제 노마드이자 비전문 배우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 대체 누가 전문 배우이고 비전문 배우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사실은 딱히 구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처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안면이 있는 배우 몇몇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출연하니까 전문 배우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하지 않을까.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외국 배우에 대해 문외한이고 한번 보면 잘 잊는 편이라 배우가 영화 안에 잘 녹아들고 연기를 잘한다 싶으면 배우라고만 생각하고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인데, 실상 이 영화에는 전문 배우는 단 둘이었고 나머진 실제로 그곳에서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 우선 나에게 놀랍고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그들의 실제 삶이기에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나왔을거라고 짐작하지만, 영화를 찍는 입장 즉 제작진 입장에서 그들을 어떤식으로 대하고, 어떤식으로 본인들이 의도한대로 디렉팅할 수 있었을까?가 정말 궁금해졌다. 정해둔 이야기의 틀과 대본이 있었겠지만 그들 전부를 통솔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등. 일반적인 영화에서 하지 않고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과 친밀감을 쌓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여러모로 제작진의 역할이 컸을 것 같고 동시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님은 이런 부분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촬영 방식을 예로 들며, '본인'이 '본인'을 연기하는 상황에 대해 뭔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스스로를 '연기'한다면 그 사이에 나오는 괴리를 떨칠 수 없었을 것이고,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촬영 중간 중간 계속적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촬영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노매드랜드>도 그러한 전통적인 영화 촬영 방식이 아닌 출연진들과 감독이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등장 인물 모두가 비전문 배우였으면 영화 자체가 통일성이 없고 어수선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원작을 각색하여 '펀'역을 새로 만들어 넣으면서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가 일련의 계기로 노마드 생활을 시작하고 실제 노마드들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 역할을 하면서도 그런 과정을 통해 입체적으로 본인의 고민과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극을 진행하는데 큰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원작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책을 주문해놓고 아직 배송중이라 읽어보지는 않아서 어떤 논조와 분위기로 이어진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평론가님과 기자님 설명에 의하면 원작은 '노마드'라고 불리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에 대한 감당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기둥과 벽이 있는 일반적인 집을 버리고 자동차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 현상이 있었고, 이들을 취재한 내용이 책의 기본 골격이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유대하고 일하며 사는지에 대해 상세히 취재하여 아주 많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은 책이라고 한다.
영화 바깥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마존'이라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이러한 노마드 노인들, 즉 60-80대의 캠퍼족을 '워캠퍼'라는 이름으로 고용하여 한시적으로 주문이 가장 몰리는 계절에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잠시간 일하게 하여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그들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년층들을 받아줄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마존이라는 기업이 이러한 제도를 만들어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로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기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익'을 위주로 운영될 수 밖에 없고, 특정 시기에 인력이 부족한 사태에 충성도 높고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에 급여 부분에 대한 가성비도 챙길 수 있는 노년층을 고용하는 것이지 그들이 꼭 노인들의 복지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계절 노동자들은 해당 계절에만 사용한 뒤 계약이 만료되면 기업 입장에서 해고할 필요도 없이 업무가 종료될 뿐이다. 기업은 그들의 해당 계절이 아닌 계절의 생활에 관여할 이유도, 책무도 없다.
서로가 윈-윈이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 아닌, 뭔가 임시적으로만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 등을 떠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곤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어떤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 것 같았다.
영화 외적인 부분은 여기까지로 해두고, 내적인 부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노마드 간의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대'였다. 사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혼자 살아가려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혼자 살아가면서도 적극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영화에서 나오는 RTR 모임에서의 그들 사이의 연대와 자동차에 결함이 생긴 상황에서 펀을 도와준 스완키가 후에 결국 돌아갔을 때 불을 피워두고 거기에 돌을 하나씩 던지며 그녀를 추모하는 등의 그들간의 느슨하다면 느슨할수도 있고 단단하면 단단하다고 할 수 있는 '연대'가 빛나는 영화로 보였다.
그리고 영화를 본 지 벌써 3주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RTR 회원 중 한명이 본인의 원래 직장이 증권가였고 본인 동료가 요트를 사두고 일이 너무 바빠 한번도 타보질 못한 채로 급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저의 요트는 여기 이 사막에 있어요.'라고 했던 장면은 두고두고 잊히질 않을 것 같다. 뭔가 마지못해, 자신의 좋지 못한 처지와 상황을 설명하기 보다는 본인의 주도적인 '선택'이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좋았고, 나 스스로도 몸은 이곳에 묶여 있으나 언젠가 저러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희미한 바람이 피어났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한가지 더, '펀'의 선택에 주목하고 싶었다. 사실 펀의 원래 성향은 노마드 기질이 있었을 것이나,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엠파이어라는 도시에 정착을 하게 되고 본인도 남편의 공장에서 일을 하며 한 지역에서 쭉 살아가다가 남편이 떠나자 본인이 살던 곳을 떠나 남편을 마음에 담아둔 채로 노마드 생활에 합류를 하게 되는데, 중간에 '데이브'를 만나면서 남편과의 생활이 '겹치게' 되고 (병문안 가는 장면, 데이브가 사는 집에 방문하는 장면 등) 데이브가 지속적으로 펀과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표현하지만 펀은 망설인다.
본인 안에 남겨진 남편에 대한 생각과 추억 그리고 사랑을 어찌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과 데이브가 제안하는 대안적인 삶 그 사이에서의 그녀의 선택이 굉장히 가슴에 큰 울림이 있었다. 결론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스포가 되기에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이에 대해 평론가님 말씀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는 꼭 거기에서 헤어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부정적인 것도 아닐 것이며, 어찌되었든 인생은 계속 되고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반복되기도 하고,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충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지금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라는 것을 펀을 통해 보여준다'는 맥락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선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그녀의 남은 여생을 응원하고 싶어지고, 스크린 속 광활한 자연을 보고 있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주 아주 작아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주 아주 커지기도 하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영화였다. 내용도 좋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이기에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동진의 라이브톡 100회 기념 미니 엽서 사진도 살포시 >~<!
현장에서 직접 봤던 영화도 많아서 뭔가 굉장히 큰 기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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