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숨 - 국수 / 반죽에 찰기가 붙으며 한덩이의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차지게 맺힌 응어리와 한바탕 씨름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괜한 오기까지 뻗치는 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내 손가락들이 악착같이 달려들고 매달릴수록 양푼 속 응어리는 더 차져집니다. 그런데요…… 응어리와 달리 내 안의 뭔가가 풀리는 것만 같은 게…… 뭉치고 맺힌 뭔가가…… 응어리라고밖에는 별달리 표현을 못하겠는 그 뭔가가 부드럽게…… 반죽의 시간이 당신에게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2. 목련정전 - 최은미 / 강상기는 딸애가 아내 밑에서 고통받았다는 것을 안다. 딸애는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 피임 실패라는 불운이 그 애를 덮치지 않는 한 딸애는 아마도 영원히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강상기 는 그것이 아내 때문일지 자신 때문일지를 생각해보다가 자신 때문일 거라고 결론을 내리며 죄책감에 잠겨드는 날이 많았다.
4.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말은 잊어버려도 그 뜻은 오래 기억할 테니까. ‘캇땀 호 가야’ 라는 말은 생각이 안 났는데, 그 뜻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요. ‘캇땀 호 가야’는 인도말로 ‘다 끝났어’라는 뜻입니다. 인도에서는 모래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그 말을 한다네요. 그래서 언젠가 사막에 가면 나도 그 말을 해봐야지 생각했거든요.”
5. 나주에 대하여 - 김화진 /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재인은 속으로 ‘해본 것’ 리스트에서 유독 도드라진 단어들을 읊었다. 독립, 절교, 파혼, 끊어진 관계들의 기록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7. 이중 작가 초롱 - 이미상 / 규는 자신의 변화에 놀랐다. 원래 규는 말을 절대 안 놓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편하게 말하라고 해도 끝까지 알겠습니다, 하는 사람이었다. 규가 보기에 반말은 관계를 무리하게 좁혔다. 사람들은 예의가 없어서 반말하는 게 아니라 반말을 하고부터 예의를 잊었다. 멀리서 정중히 목인사를 하던 사람도 남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게 되는 것이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바라면 안 될 것을 바랐다. 그러니까 말을 놓지 않았다면 규는 지경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못했으리라. “왜 그랬니?”
1. 눈으로 만든 사람 - 최은미 /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고 사는 것. 강수영이 그걸 얼마나 원하는지 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강수영에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한 번도 만지지 못하던 것들을 자신의 상자 안으로 가져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3.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욥기 43장) - 이기호 / 최근직이 김진목 전도사를 찾아가 회개할 때,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만났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그것이 내가 시킨 일 같더냐? 내가 만난 적 없는 자에게, 나를 만났다고 거짓말을 시킨 것 같더냐? 그건 나도, 최근직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말이었느니라. 최근직의 수치심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거짓말이었느니라. 그렇게라도 최근직은 고통을, 모욕을 잊으려 했던 것이니라. 그것을 내가 만든 것 같더냐? 내가 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느니라.
5. 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7. 이해 없이 당분간 - 김금희 외 21인 / 사람들은 그것이 불행한 사고였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도 합니다. 타인의 고통은 차창 밖으로 밀려나는 풍경만큼이나 빨리 멀어지는 것이니까요. 나는 아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개를 찾고 싶습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꺼내주고 싶습니다. 개는, 어디에 있을까요?
10. 2022 제 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임솔아 외 6인 / "솔아야, 너무 열심히 쓰지마." 원영은 말했다. 그 말이 나는 못내 서운했다. 내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느냐고, 나는 불만을 섞어 볼멘소리를 했다.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원영은 말했다. 내가 모르는, 원영은 잘 아는 이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열심히 쓰지 마. 이 소설을 쓸 때 가장 많이 떠올린 말이다. 원영이 내게 누누이 말해왔던 것처럼 원영도 잘 먹기를, 잘 자기를, 행복하기를. 오직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11. 애쓰지 않아도 - 최은영 / 그 순간 나는 데비와 같은 꿈조차 꿔보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노후까지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이 내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니, 자식이니 같은 건 내게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사는 게 팍팍하니까 그런 말랑말랑할 꿈 꿀 시간 없어,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삶을 원하나, 원하지 않나, 라는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2. 그들의 이해 관계 - 임현 / 울먹이는 남자를 일으켜세우는 대신 나는 그와 마주앉았다. 마주앉아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런다고 내가 더 괜찮아지는 것도 아닌데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었다. 여전히 해주는 보고 싶고, 그립고 아픈 것들은 조금도 줄지 않았으나 그때는 그런 것들이 몹시 필요해 보였다.
15. 불펜의 시간 - 김유원 /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놓쳐보리고 했다.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는 없다고, 놓쳐도 되는 기회도 있다고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16. 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 모든 말에는 힘이 있다. 특히나 어떤 말은 주술에 가까울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알지 못하는 새 마음을 파고들어 삶의 각도를 아주 조금 바꿔놓기도 한다. 그때, 그 보름날 한영의 말 덕분인지 아니면 외로움의 시효가 다 됐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날 이후 나는 일 센티미터 정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18.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 윤고은 / 4년 전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그건 커피 자판기에 돈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한 잔의 종이컵처럼 배출되었을 때 나를 집어 든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내 졸업이 잘못된 주문이라도 된다는 듯, 나는 자판기 밖도 안도 아닌 투출구에서 멈춰버렸다.
20. 환한 숨 - 조해진 / 저는 그 방을, 그 방이 있던 동네와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까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척하며 살아왔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방이 저에게 새겨 넣은 상처가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는 것을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에 빚을 지며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거겠죠. 상처의 고유함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공평한 특권일 테니까요. 만약 그때 제가 조금이라도 울었다면, 그건 단지 뜻밖의 장소에서 한 뼘 더 넓게 보게 된 풍경에 도취되었기 때문일 거에요. 또 한 시절이 지나고 나면 이해하기 힘든 과장된 회한으로 남게 될 그런 도취감, 그럴 때 통증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21.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이동진, 김중혁 / 이동진 - 역사 시간 처음에 에이드리언은 이런 얘기도 합니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 뿐입니다.”
김중혁 - 전 그게 이 소설의 단 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106p
김중혁 - 그리고 마지막에 에이드리언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정리해주는 거죠. 사실 이 두 사람 의견도 전체 맥락 속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얘기에요. 108p
김중혁 - 하나로 요약해서 이야기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죠. 그래도 말하자면, 삶 자체가 거대한 혼란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것이겠죠. 저는 원인과 결과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어떤 소설이 있을 때, 그 소설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 소설 안에서 해결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원인이 없는 결과도 있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이죠.
이동진 -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이 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반전 그 자체나 반전의 내용이 아니라 그 반전이 일어나기까지 주인공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점인 것 같아요. 결국 이 소설이 이야기하는 핵심은 그 반전의 구체적인 양상이 아니라,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몰랐던 인간의 무지 자체인 거죠. 110-111p
24. 인생의 역사 - 신형철 /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무슨 말로 시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아주 오랜만에 만난,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친구 같은 책이다. 떠올릴 때마다 좋은 추억들이 몽글몽글 머리 속을 둥둥 떠다니는 그런 좋은 친구를 그리워만 하다가 아주 우연히 만났을 때,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의미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 소중해서 기쁘지만 한편 슬픈 책이다.
읽으면서 눈물이 많이 나와서 힘들었던 책을 굳이 택하라면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을 읽고는 이 책으로 바뀌었다. 그 어느때보다 등장 인물들의 마음이 내게 아주 깊이 전해졌기 때문에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특히, 초반의 '나'와 '엄마'의 갈등이 아주 잘 보이는 대화 부분에서 가슴이 답답했는데, 상황이 공감이 되어서라기 보다는 '나'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이 극명하지만 둘이 각각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딸이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말인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론 모르고 싶었달까. 그 말들이 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가 아주 잘 묘사되어 있어서 심금을 울렸다.
현실에서 내가 딸의 입장이기에 엄마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다. 어렴풋이는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지만, 그래도 잔인했던 몇 몇 장면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이입되어, 이혼을 하고 힘들어하는 딸 앞에서 사위 걱정을 하는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는 독해보이는 딸보다, 나약해보이는 사위가 걱정되는 건가. 아무렴 나의 혈육인데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희령에서 만난 할머니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가 더더욱이 기대되면서도 아슬아슬한 마음도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는 극히 좋지 못하고, 나와 엄마의 사이도 서먹서먹. 그렇다면 어린 시절에 보고 연락이 끊긴 할머니를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만나게 된 '나'는 어떨까? 내가 만난 할머니는 엄마가 그토록 싫어했던 할머니가 아니라, 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소상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손녀가 불편할까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는 '진짜 어른' 같았달까. 이런 어른을 만나 오랜 옛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들기도 했다.
책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본인의 어머니와 가족들 이야기(과거)와 이혼을 하고 희령에 내려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린 나(현재)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와 만날 때마다 옛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교차가 전혀 거북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더 좋았다. 주인공이 더 자주 할머니를 만나 과거 이야기를 내가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글의 여성들이 모두 각자의 상처를 갖고 삶을 이어가지만, 그것이 결코 외롭게 혼자 겪는 상처가 아니라 주위에서 어루만져줄 수 있는 상처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연대는 아름다웠다. 삼천과 새비, 영옥과 희자, 정연과 지연 그리고 명희 고모 등 모든 인물들의 삶이 생생히 다가와서 좋았다. 아주 오랜만에 읽으면서도 남은 분량이 아까워서 천천히 읽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던 좋은 책을 발견해서 아주 행복했다.
덧붙여 교보에서 진행한 최은영 작가님의 친필 사인 책 구입에 도전했다가, 모바일 링크가 열리지 않아 처참히 실패했던 tmi와, 다음번엔 꼭 PC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는 공지를 띄워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기며. 만약에 만약에 아주 만약에 당첨이 되었다면 어떤 문구로 싸인을 받아둘지 생각했었는데 이미 나는 한권 갖고 있으니, 좋아하는 지인 OO에게 선물하면서 '내게 무해한 OO의 미소'라고 진부하지만 그래도 잠깐의 행복 회로를 돌려봤다는 사족을 끝으로 후기를 마친다.
[문장 기록]
그때의 나는 사람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절히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서울에서처럼 친구와 한참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 손을 뻗으면 닿을곳에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깝고 끈끈해서 속까지 다 보여주고 서로에게 치대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했다. 14-15p
'나는 너는 걱정이 안 돼. 그런데 그 약한 애가 나중에 자살이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어떤 말은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한다. 내게는 엄마의 그 말이 그랬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나의 이혼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했다. 심지어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18p
—가고 말고는 너가 정하라우. 군인들이 널 데려가면 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러는 기야. 네 말이 맞다. 내 너를 몰라. 너도 내를 모른다. 기래두 알 수 있는 기가 있잖아. 너가 이렇게 가버리면 내는 불행해질 기야. 되돌릴 수도 없이 고통스러워질 기야. 내를 믿지 않는 것이 옳다. 내는 너가지금처럼 사람들을 의심하며 살았시면 좋갔어. 내를 온전히 믿구 따라오기를 바라는 기는 아니다. 내랑 개성으로 간다면, 너이 어마이를 돌봐줄 동무를 너이 집에 보낼 기야. 내일 이 시간, 여기로 그 동무와 함께 오갔어. 어마이에게 인사드릴 시간이 필요하니. 43-44p
—맛이 좋아요. 그 말을 하며 웃는 새비 아주머니를 보고 증조모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열여덟 살이라고 해도 또래보다 작고 어려 보이는 이런 아이가 겪은 고생에 마음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지금 자기를 보며 미소 짓는 저 얼굴이 자신을 거부하는 차가운 표정으로 변할 미래가 보여서였다. 언제 거부당할지모르는 채 그때를 기다리는 건 지겹고 비참한 일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63p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86p
희자 어마이, 전지전능한 천주님이 왜 손을 놓고 계신 기야. 나는 슬퍼만 하는 천주님께 속죄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 앞에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말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이 정말 계신다면 그때 뭐하고 계셨느냐고 따지고 들고 싶어. 예전처럼 무릎 꿇고 천주님, 천주님 감사합니다, 말하고 싶지않아. 기래, 나를 살려주셨지. 기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 목숨은 뭐가 되나. 124p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130p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134p
해가 졌다. 그믐밤이었다. 별 무리가 아주 낮게까지 내려와 밝게 빛났다. 그걸 보면서 할머니는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 천한 존재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167p
우울할 땐 우울한 책을 읽어서 우울함을 극복하는 나. 사실 항상 우울함 같은 건 내 인생에서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지니고 가야할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편이라 보통 우울한 내용의 책을 잘 선택하고는 하는데, 책을 읽고 그 우울감이 극복이 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환상의 빛>을 감상하기 전 책을 먼저 읽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고 영화를 봤을 때 약간의 실망감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책을 뛰어 넘는 어떤 것을 기대하기에는 책이 가진 그 특유의 개인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떤 것들이 나는 더 좋았기 때문인데, 영화에는 상영 시간의 한계로 책의 모든 것을 담기에 부족한 면도 있기에 불리한 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좋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책으로 <환상의 빛> 꼭지를 감상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렇다고 영화가 말도 못하게 별로이거나 한 것은 아니니 영화와 책을 둘 다 감상할 예정이라면, 영화를 보고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책 안의 내가 좋아한 몇 장면이 영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첫 번째로는 재혼을 위해 떠나는 길에 조선인 '한씨'를 만난 장면이 뇌리에 오래 남았기 때문에 영화에서 계속 그 전송 장면을 찾았지만 없었다. 한씨가 우메다에서 하차 하지 않고 아이들 둘의 손을 잡고 '나'와 유이치를 오사카까지 전송하며 마지막에 안지 십년만에 처음으로 찡긋 웃어준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그 전송과 웃음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들과 동물원 가는 길에 '나'와 아들을 마주친 한씨와 한순간에 옅게나마 연대하게 된 그 순간이 기억에 남았다. 플랫폼에서 '나'를 마주쳤을 때 '나'의 표정이 어땠을지를 한씨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게 되었기 때문일까. 단순히 남편을 잃은 자를 향한 연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에 남는 건 '나'가 어렸을 때 살던 곳에서 할머니를 잃어버리고 끝내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를 죽인 건 그 집 식구일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 집의 바닥을 모두 파헤치는 장면이다. 다다미를 들어내고 바닥을 파는 순간의 가족들 각각의 마음이 어땠을지에 대해 상상했다. 책에는 일인칭으로 '나'의 생각이 이어지는데, 이때 '나'는 가족들이 사실은 할머니가 어딘가에서 죽었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 '나'가 하는 생각들이 너무나 처연했기에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본인의 남편이 어떤 이유에서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다른 사람과 새 삶을 꾸려야 하는 '나', 그녀가 남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처연하고 슬프고 또 우울한 분위기에서 맥락이 이어지지만 중간 중간에 꼭 그렇지만은 않은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슬픔에 잠식되어 있지만 결국엔 새로운 삶에 적응되어 가는 '나'가 남편에게 보내는 메시지.
왜 그랬을까?를 쫓지만 사실 그 이유는 남편만이 알고 있다.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럴 때가 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글이다. <환상의 빛> 뿐 아니라 이 단편집 안의 모든 단편이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 사이의 일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단편은 <침대차> 였는데, 실제로 내가 이 침대 형식의 기차를 여러번 타봤기 때문에 느껴졌던 여러 공감되는 부분과 주인공이 회사 내에서 겪는 일들이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더 와닿았던 편이다.
오사카에서 도쿄로 출장을 가게되는 주인공이 신칸센 예매 시간을 놓쳐 어쩔 수 없이 저녁에 출발하는 침대차를 타게 되어, 같은 칸에 탄 한 노인을 마주하고 그 노인은 사실 어렸을 때 본인이 겪은 어떤 '죽음' 관련된 사건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분이었고 그 사건을 액자식으로 다루고 그 일에 대해 노인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또렷하게는 알 수 없어도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삶이 지난하게 이어지는 것에 대해 어떤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우울하기 때문에 이러한 류의 소설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뭔가 일본 특유의 정서 같달까. 중/고등학교 때 푹 빠져 읽었던 일본 소설 특유의 그 느낌을 회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 <환상의 빛>에서 채워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느낀 사람이라면 원작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게 느꼈던 문장을 기록하며 후기를 마친다.
[문장 기록]
저는 눈을 감고 세 사람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터널 나가야 시절부터 소소기의 어촌으로 돌아온 긴 시간의 변천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신을 잃어버린 슬픔은 저 자신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이상한 것으로, 그것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억측이 미치지 못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발을 동동 구를 만한 분함과 슬픔이 가슴속에 서리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함과 슬픔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을 위한 각별한 노력이나 궁리를 한 것도 아닌데 다미오 씨와 도모코는 이제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유이치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키구치 집안 사람이 다 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뒷모습에 말을 거는 것으로, 위태롭게 시들어버릴 것 같은 자신을 지탱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가 비쳤습니다. 아아, 이것이 불행이라는 것이구나, 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느덧 꾸벅꾸벅 졸며 따뜻한 바다에 떠 있는 기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십몇 년 전 경찰이 집의 다다미를 들추고 방바닥을 판 날,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을 때의 그 신기한 안도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친 바다가 울부짖는 소리도, 덧문이 심하게 흔들리는 서리도, 비 개인 레일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도 멀리 밀쳐두고 깊은 안도감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 '환상의 빛' 79-81p
대체 무슨 생각에서 다미오 씨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확실히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력이라든가 정신력이라든가 하는 그런 표면적인 게 아닌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의 마음에는 이 소소기 바다의 그 한순간의 잔물결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봄도 한창이어서 짙은 초록으로 변한, 거칠어지기도 하고 잔잔해지기도 하는 소소기 바다의 모습을 저는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자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환상의 빛' 81-82p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보는 그 사람일 뿐이다. 그가 자살한 이유 또한 알 수 없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가 자살한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끝내 그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자살할 만한 이유는 살아남은 사람이 스스로가 납득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를 온전히 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말 16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