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디북스에서 G마켓 이용권을 저렴하게 구매하여 구독하게 됐던 "리디셀렉트"에서 가장 먼저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인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사실, 나는 평소에 SF를 다루는 소설을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취향이 나름 확고한 편이라 다루는 주제가 내 성향에 맞지 않다거나, 과학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으면 조금 꺼려졌던 것이 읽으면서도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계속 자문하게 되고, 해석 불가능한 단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은 해왔지만, 최근 들어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을 접하면서 일반적인 현대의 배경에 SF를 가미한 소설에 대한 나만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기도 했거니와, '꼭 내가 읽고 싶은 책만을 읽는 것이 독서 습관에 좋지는 않다'는 것을 많이 느껴왔기에 처음으로 시도해본 SF 소설 책이었다. 뭔가 SF라고 하면 판타지 요소가 많고, 어떤 가상의 배경과 인물 그리고 시점들을 창조해낼 것 같다는 선입견에 시도해보지 않았었는데, 이번 독서 기록을 계기로 나의 SF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지고, 앞으로는 이런 주제를 다루는 소설들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꼭지는 <감정의 물성>과 <관내분실>이었는데, 여기서도 엿볼 수 있는 나의 취향은. 전체 단편 중에서 가장 '우주'와 관련이 없는 소설 두 편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평소 우주 공간에 대한 지식과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두 다 술술 읽히는 좋은 글들이었다. 나같은 우주, 과학 문외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기 때문에 모든 단편들이 다 좋았다. 하지만, 그 중 꼽자면 <감정의 물성>과 <관내분실>이 더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꼽았다. 특히, <감정의 물성>은 평소 이런 물건이 진짜로 현실에 존재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해왔던 것도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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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감정의 물성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주인공이 회사 후배인 유진과 나누는 대화들이었는데, 나는 유진에게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왜 이러한 감정의 물성에 효과를 부정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1인칭 화자의 입장에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와는 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유진쪽에 더 공감이 되었던 것은, 유진이 이 감정의 물성이라는 것의 효과에 대해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내가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하는 생각과 소름돋게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문장 기록]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음악은 다들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음반이나 LP도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미지를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그런 가게도 있고요. 근데 막상 사면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뿌려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바보 같았는지 유진은 씩 웃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中
'아날로그'적인 것을 더 선호하는 나에게도, 유진의 말은 굉장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2020년의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휴대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PC 같은 모바일 기기로 모든 것을 공유하고, 구독하고, 읽고, 공감할 수 있으나 그 안의 세계로만은 부족한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또 소유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욕망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전자'를 통한 것보다 실재하는 것에 대한 구매욕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나, 독서를 할 때 전자책 보다는 종이책이 더욱 더 집중되는 느낌이 강하고,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진짜로 '읽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아직까지도 종이책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또, 아이돌을 오래 좋아해왔기 때문에 콘서트에 실제로 다녀왔다는 것보다 어떨 땐 콘서트 티켓을 소유하는 것과 그것을 잘 보관해두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기 때문에 더욱 더 감정의 물성이 효과가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 것 같다. 나의 평소의 모습과 비교 대조하여 보는 재미가 있었던 흥미로운 단편이었다.
또, <관내분실>이라는 소설에서는 사후에 도서관 아카이브 상에 '마인드'를 통해 나의 영혼 비슷한 것을 남겨둘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어머니가 마인드화 되어 보관되어있는 곳으로 찾아간 딸의 이야기였는데, 일반적인 도서관에서 관내에서 책이 분실되면 찾기가 힘들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시작되어 '마인드'라는 가상의 영혼을 만들어 낸 작가님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가족 사이에서의 두드러진 '냉소적'인 태도가 인상깊었는데, 어머니의 모성애를 성장과정에서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자라온 딸의 입장에서 본인이 임신을 하고, 뱃속의 아이에게 모성애를 나누어 줄 수 있을까에 의문점을 가진 점에서, 가족을 이룬 여성의 고민을 엿볼 수 있어서 더더욱 인상 깊었다.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써의 지위가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도태되어 그 아이에게까지 애정을 나누어주지 못하고 결국 한 가정 안에서의 '애정 결핍'과도 같은 모습의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가족들의 모든 것들이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애잔했다. 마지막에 '엄마를 이제는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딸에게, 하늘 나라로 간 엄마가 느낄 감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여운이 가장 길게 남은 문장을 기록하고 독서 기록을 마치고자 한다.
[문장 기록]
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