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바로드림으로 구입해서 단숨에 읽어버린 정세랑 작가님의 <옥상에서 만나요>라는 책. 사실 나는 평소에 SF 장르라는 것에 일종의 거부감이라면 거부감을 갖고있던 터라, 영화를 볼 때도 SF와 같은 과학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영화보단 좀 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보통 이야기가 다루는 세계관이 너무 넓거나 심오하면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복잡하기 때문인지 세계관이 너무나 방대하고 사람 사는 세상의 현실과 괴리가 있을 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해서인 것 같다.

이런 성향을 가진 내가 정세랑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건 <피프티 피플>이라는 소설이었고, 그 책을 읽고 작가님의 문체에 반해 다른 소설책으로 그 흥미가 뻗어나간 것이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피프티 피플>에서 다루는 우리네 이야기에 SF적 요소를 살짝 가미한 정도의 소설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아 고르게 되었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크게 총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책을 읽은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인상 깊었던 단편은 '보늬'와 '해피 쿠키 이어'이다.

웨딩드레스 44
효진
알다시피, 은열
옥상에서 만나요
보늬
영원히 77 사이즈
해피 쿠키 이어
이혼 세일
이마와 모래

다른 단편들도 물론 다 좋았지만, 이 중 두편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했고, 그것이 내가 살아온 인생 경험과 만나는 지점이 여러 곳이라 더더욱 끌렸던 것 같다.

 

깨알같이 찾아 본 순우리말 '보늬'의 의미

 

 

첫째로, '보늬'에서 인상 깊었던 건 아무래도 돌연사.net 이라는 공간인데, 보니 언니가 갑자기 돌연사한 후, 갑작스런 상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주변인들이 상실감을 느낄까, 돌연사한 사람들에게 연결고리가 있을까에 대해 추적해보는 사이트를 개발하는 이야기인데 한 사람의 '죽음'이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과 연계되어 있으며, 슬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아직까지 돌연사를 한 사람이 주변에 없었음에도, 이미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신 분들의 죽음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돌연사는 하물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위로를 간접적이나마 연결된 사람들에게서 받는다는 것의 신선함이 존재하는 글이었다.

[문장 기록]

더 좌절할 때는 젊은 세대의, 충분히 개인주의자가 될 기회가 있었던 세대의 사람이 비슷한 말들을 할 때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기성세대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여 여자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말들을 할 때, 여자는 마음속 리스트에서 그이의 이름을 지웠다. 너는 이제 그만 만나야 하겠구나, 질린 채 생각했다.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이민을 가는걸까? 눈을 뜨면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도시였으면 했다.

"나는,"
생각도 하기 전에 다음 말이 입 밖으로 그냥 나와버렸다.
"그만하고 싶어."
언제부터였을까, 그만하고 싶어진 건. 돌연사.net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가스로 이루어진 행성 같았다. 점점 거대해져갔는데, 사람들은 느슨한 구름으로 만들어졌으니 가볍지 않으냐고 물어왔다. 나약한 나에게는 너무 무거웠는데도.

"하다가 죽지 않는 거, 하고 싶다."
"있어? 그런 거?"
"……그럼 하다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 하고 싶다."
"그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 두 일에 대해, 혹은 둘의 교집합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보늬' 中

둘째로, 해피 쿠키 이어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화자가 외국인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나만 생각해봐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다른 한국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어떤 사고의 흐름을 갖는지 잘 알아채지 못한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엔 언어의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오랜 시간동안 그들과 대화를 나눌 만남의 기회도 없었기에 그들을 오래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도 그렇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건,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한국의 삶을 경험하다보면 우리와 완전히 같진 않아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분명 작가님도 상상에 의해 쓰신 글이테지만, 한국 직장에서의 일들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장면들 속에서 우리가 가진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이를 에둘러 고발하는 방식인 듯 보여 앞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을 대할 때의 마음 가짐이나 생각을 더더욱 경계해야 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을 해보기도 했다.

특히나, 이 단편의 주인공인 '이스마일'이라는 사람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다라고 규정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의 틀을 깨는 인물이었다. 여자 친구에게 한없이 세심하고, 그녀가 힘들어하는 일이 있으면 나서서 도와줄 줄 아는 사람. 특히나, 그는 그녀의 마음을 진정 '이해'하는 듯 보여서 좋았다. 의사 소통이나 문화적인 차이를 가지는 사람들 간의 오히려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모습이 좋았고, 서로의 위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통해 나까지 위로 받을 수 있었던 좋은 글이었다.

[문장 기록]

"기자, 잘했을 것 같아요."
그 말만은 밖으로 나왔다.
"왜요? 어디가요? 나 재수없어요?"
"한국에서도 기자들은 재수없어요?"
"세계 어디서나 그렇지 않을까나."
"그런 뜻은 아니고요, 안 어울린다는 점에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데에도 안 어울려요. 그래야 잘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어울리지 말아야, 따로여야 할 수 있는 일?"
실제로 말했을 때는 더 엉망으로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제대로 알아들었고 기뻐했다.
"이상해. 진짜 가까운 사람들도 몰라주는 부분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온 사람이 더 알아채준다는 건."
"별로 안 달라요. 생각보다 안 달라요."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해피 쿠키 이어' 中

SF 장르에 거부감이나 판타지 같은 부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정세랑 작가님 특유의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고도 통통 튀는 문체로 아주 가뿐히 읽어내릴 수 있는 책이므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Posted by 디디_d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