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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22 [독서 기록/감상] 최은영 - <쇼코의 미소>를 읽고.

 

 

 

 

 사실, <쇼코의 미소>는 내가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에 밟히던 소설이었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가지 일이 더 우선이라는 이유로 애써 외면하고 있던 소설책을 드디어 완독했다. 완독한 후엔 이 책에 대해 꼭 후기 겸 감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티스토리에 글을 남겨본다. 친구가 <내게 무해한 사람>이 인생 도서라고 했을 때는 사실, 최은영 작가님에 대해서 어렴풋이만 알고 있는 상태라 '그 정도로 좋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내가 직접 읽어보니 인생 도서가 아니 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다. 

 

 최근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김연수 작가님과 백석 시인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한겨레21에서 나온 21이 사랑한 작가 시리즈를 알게 되었고, 이 꼭지로 된 기사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최은영 작가님의 인터뷰도 읽게 되었다. 인상깊은 문구를 캡쳐해두고 고이고이 간직하려고 남겨두었는데, KTX 해고노동자에게 "공부를 더 잘했으면..." 하며 폭언을 날리던 아저씨의 일화를 보고, 사회으로 시사하는 바가 뚜렷한 부분이 있는 소설 책임을 알게 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다. 바로 구매까지 이어져서 읽고, 읽으면서 여러번 눈물을 훔쳤다. 최은영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이 너무 좋으므로, 하단에 링크를 남겨본다. (널리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

 

기사 링크 : 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34.html

 

21이 사랑한 작가 최은영① “우리는 모두 소수자성을 가졌죠”

 

h21.hani.co.kr

 

 작가님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어떤 작은 일화에도 숨을 불어넣는 분처럼 느껴졌다. 제 3자에겐 작아보이지만, 당사자에겐 엄청나게 크고 묵직한 그런 여러 일화들. 글을 읽는 내내, 어찌나 울컥하고 마음이 묵직하게 울리던지. 소설책을 덮고 난 후의 여운이 길게 남은 책이 몇권 있었으나, 이 책은 더더욱 그렇다.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한편 보고 엔딩 크레딧이 끝나도록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여운을 느끼게 되는 느낌이랄까.

 

 대학생 때 처음 황정은 작가님의 <백의 그림자>와 김애란 작가님의 <비행운>을 읽고 난 후의 마음 울림과 비슷한 묵직함을 받았고, 이 느낌을 아주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레고 벅차다. 

 

 우선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해설│서영채 (문학평론가)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

작가의 말

 

  목차에 있는 소설 중에 어떤 소설이 가장 좋았는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두 좋았다. 특히,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와 '미카엘라' 그리고 '비밀'을 읽고 많이 울었다.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 감정 조절이 힘들어 책을 계속 덮었다가 다시 읽었다가 하던 그때가 떠오를 정도로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이 꽤 있었다. 

 

 순애 언니가 나의 병실에, 본인이 만든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고 찾아왔을 때 웃는 모습으로 가볍지만 또 그렇지 않게 '우리, 같이 지냈으면 어땠을까?' 하던 그 언니의 물음이 왜 그리 서글픈지. 순애 언니의 집에 찾아갔을 때, 내가 사간 통닭을 허겁지겁 먹는 언니의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이 어땠을지. 이런 것들에 하나씩 집중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공연히 '올곧은 마음'으로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려진 불가피했던 '고통'에 대해 '투쟁' 또는 '극복'하려고 하는 마음들이 너무 슬프도록 찬란한데,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용기 없는 나에 대해 실망해보기도 하고, 등장 인물들에게 마음으로나마 박수와 응원을 보내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미카엘라' 속 미카엘라처럼 그렇게 해도 바뀌는 건 없고, 나한테 당장 주어지는 건 없다(현실적인)고 스스로를 무기력에 빠뜨리는 그런 모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왜 자꾸 이상하게 이 글을 읽으면서는 화자에게 나를 대입해보기도 하고, 화자의 가족 구성원 중의 한명으로 나를 대입해보게 되는걸까. 감정 묘사가 섬세하고 그 섬세한 표현을 흡입력 있게 따라가다보면 결국 마지막에 그림, 또는 영화처럼 계속 소설 속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해서 너무나 좋았다. 표현력이 풍부하지 못해 '좋다'는 말로 밖에 감상을 남길 수 없는 내가 싫어질 정도로 좋다.

 

  범사에 감사하며, 교황님을 알현하려 미사를 드리러 서울로 올라가는 수고로움을 불사하고라도 믿고 의지하던 그런 마음조차 자신에게 종교나 마찬가지였던 딸의 부재로, 가장 좋아하던 부활절 예배도 예전같은 마음일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이런 내용을 읽으며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던 외할머니가 생각이나 많이 울었다. 특히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이야기들이 많아선지, 자꾸만 보고싶은 얼굴들이 떠올랐던 것 같다. '비밀'을 읽으면서는, 말자 할머님에게 '비밀'일 수 밖에 없는 딸의 부재(죽음)이 서럽지만 목놓아 울지도 못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지. 등장 인물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헤아려 보게되는 소설이다.

 

 이 책에서 내 마음을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마냥 널리 퍼지듯 마음을 울리던 문장들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후기를 마무리 해보고자 한다.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더 나아가 위로를 주는 이 책을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문장 기록]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쇼코의 미소' 33p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쇼코의 미소' 34p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의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쇼코의 미소' 57p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씬짜오, 씬짜오' 85-86p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씬짜오, 씬짜오' 89-90p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115-116p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진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미카엘라' 238-239p

Posted by 디디_d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