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좋은 영화는 개인의 취향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이 영화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싶다. 사실 스릴러, 서스펜스, 미스터리 류의 장르는 주로 드라마, 가족, 성장, 로맨스 등의 비교적 따뜻한 장르를 좋아하는 내게 그닥 끌리는 장르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서스펜스의 서늘함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잔인함과 극도의 긴장감을 이끌기 보다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여러가지 이야기를 슬프지만 차분히, 잔잔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은 방식으로 전달해준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그 영화가 꼭 우울하거나 비참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 영화가 잘 설명해준다고 느꼈다. 아주 무겁지만 꼭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에 관한 감독의 고민이 곳곳에 엿보인다. 영화 안에서 상영되는 여러 영화들을 그냥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본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섬세하고도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이 후기를 읽고 있다면, 평론가님 이야기 정리 + 필자 생각 갈무리 정도로 보고 가볍게 읽어주었으면.
사실 이 영화를 본지가 꽤 되었는데 굳이 지금 후기를 남기는 이유는 영화 자체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떠나선 중국 유학 시절 731부대에 방문한 적이 있어 그때의 기억이 내 머리와 가슴에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어로 된 오디오 해설을 듣기는 했으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한 채로 그곳에 방문해 당시 행해졌던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여러 인권 유린 행태를 보곤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 듯 머리가 띵해 멍히니 한 곳에 오랫동안 서있어야 했고, 전시관 사이 사이를 다니면서 느껴지는 증오와 소름에 느껴지는 공포로 빨리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그 반대로 꼼꼼히 봐두어 이러한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영화 안에 나오는 역사절 사실이 이뤄진 공간에 방문한 적이 있다는 점이 인상깊기도 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한명이라도 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후기를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되나, 혹 누군가 검색하여 우연히라도 보게 된다면 그 사람 만큼은 내가 느낀 감정과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아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1. 구로사와 기요시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필자는 사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보다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쪽이 조금 더 익숙하달까. 2018년 개봉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 <아사코>를 보았기 때문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이 영화의 등장 인물 중 한명인 히가시데 마사히로 정도만 안면이 있고, 일본 영화계 거장이라고 알려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보았다.
그는 장르 영화를 주로 찍고, 관계의 균열과 왜곡에서 나오는 서늘한 순간들을 잘 포착하는 감독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감독이 도쿄대 강의 과제 중 시나리오 각본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고, 그 중 잘 쓴 각본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제자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었던 것이다.
시대극에 잘 어울리는 엄정한 카메라 워크는 사실 시대극 자체가 예산이 많이 드는 영화 장르이나, 일본 영화계 자체가 예산이 항상 부족한 환경이기 때문에 최대한 보여지는 부분을 제한하여 찍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촬영 기법이면서도 한정된 예산 안에서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영화 안에서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고베'인 것은 19세기 중반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된 항구 중 핵심적인 너덧 개의 항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고베에는 일본과의 무역업을 위해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 섞여 살고 있었으며, 거리에 외국인이 많이 있어도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 안에서 주인공인 '타카하지 잇세이' (남편 유사쿠역)가 코스모폴리탄 ('세계주의의 사상을 가진 사람')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 것의 하나의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3. 영화 안에서의 역사적 맥락.
사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인이 만든 태평양 전쟁 직전의 역사를 다룬 일본 영화라고 하면 그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닥 와닿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반응이 주를 이룰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현재까지 제대로 바로잡지 않은 채인 상황에서 만든 영화라니. 하지만 이 영화는 '그래도 그나마' 자기 반성적이며, 역사적인 사실만이 주를 이루지 않고 영화 안에서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에 관동군 생체 실험 현장에 다녀와서의 기억이 남아있기에 썼다고는 했지만, 사실 그러한 개인적인 기억이 없더라도 누구나 주인공의 감정선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1940-1941년을 배경으로 하며, 이때는 1940년 9월 시작된 소련-몽골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일본 관동군이 참패하던 시기이며, 이때를 비롯하여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 일본의 자신감은 하늘에 우뚝 솟아있었고, 동남아까지 야욕을 드러내는 중에 미국이 일본으로의 석유 수입 막아 진주만 공습을 하기에 이르는데, 이때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팽배했던 상황이었다.
4. 영화 안에서의 로맨스.
이 영화 안에는 두 개의 삼각 관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아내를 중심으로 하고 하나는 남편을 중심으로 하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 남편 유사쿠 - 아내 사토코 - 아내의 소꿉친구 야스하루
* 아내 사토코 - 남편 유사쿠 - 만주에서 온 후미오
이렇게 두 가지 삼각 관계로 이루어지는데, 첫번째 아내 사토코를 중심으로 보면 사토코가 하는 선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이유는 남편 유사쿠는 본인을 세계 시민으로 정의하고 본인이 태어난 일본이라는 국가보다 세계의 보편 가치를 더 중시한다. 본인이 우선적으로 지키고자하는 신념은 '일본 국민으로서의 민족성'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의'인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아내의 소꿉친구인 야스하루는 일본 헌병으로 비틀린 민족주의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사토코는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쪽에 설 것인가?'가 중요한 영화이기에 이러한 삼각 관계 또한 중요하다.
이 로맨스에는 눈으로 보여지는 가족과 사랑 위에 민족과 정의 등의 더 큰 가치들이 덧 씌워져있다. 국가란 가족의 확대판인데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선택할 것인지 본인의 행복과 신념을 지킬 것인지를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남편 유사쿠는 혈연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삶을 동경하고, 아내 사토코는 가족과 사랑을 중시하고 본인이 가진 것을 지켜가려는 태도로 시작하여 후반부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5. 스파이는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 <스파이의 아내>의 역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는 스파이가 등장하는가? 등장한다면 남편과 아내 중에 도대체 누가 스파이란 말인가? 싶지만, 이 영화에는 스파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스파이가 있어야 스파이의 아내가 있는 것인데, 남편 유사쿠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왜 <스파이>도 아니고 <스파이의 아내>일까? 그 이유는 그저 부차적으로 보이던 인물(아내 사토코)이 후반부에 정면에 나서 영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에는 계속 아내가 남편의 트로피 와이프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도 아내에 대해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본인이 하는 생각과 일에 아내를 전혀 관여시키지 않는다.
정리하면, 중반부에 남편과 남편의 조카가 같이 만주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이 영화에서 부차적인 인물로만 등장하고 그 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만주에서 찍어온 필름을 보게 된) 아내의 선택이 중요하게 극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스파이의 아내라는 단어가 3번 나오는데, 각각의 뜻은 첫번째 아내가 '내가 모욕을 받아도 좋단 말이야?'하며 본인은 스파이의 아내가 되고 싶지 않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항의의 뜻'으로 1번째로 등장하고, 그 후 남편과 함께 망명 계획을 짜고 미국으로 가려고 할 때 남편이 스파이건 아니건 상관 없이 본인은 남편의 뜻을 따를 거고, 남편이 스파이라면 본인은 스파이의 아내가 될 것이라는 '선언의 뜻'으로 2번째 등장하며, 마지막으론 남편이 아내에게 본인은 상해로, 아내는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다른 동지를 찾아, 너는 스파이의 아니야'라는 대사를 할 때 3번째로 등장한다. 마지막은 믿었던 남편의 '배반의 뜻'으로 볼 수 있다.
6. '믿음'에 관한 영화.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믿음과 의심 그리고 배반'의 키워드로 정의할 수도 있다.
남편 유사쿠 : 자신이 나아갈 길과 신념을 위해 본인을 믿는 사람을 배반할 수 밖에 없는 인물, 본인이 믿는 이들이 스파이가 아님을 믿으니까 믿는 인물 (동어반복)
헌병 야스하루 : 누군가를 철저히 의심하고 혐의를 가진 이를 체포해야만 하는 인물
아내 사토코 : 믿고 싶으니까 믿는 인물 / 남편을 믿고싶다는 강렬한 염원을 가진 인물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7. 엔딩에 관한 이야기.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1940년 9월에 아내 사토코가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앞에서 '아주 훌륭해!'하고, 남편이 배에서 손을 흔들며 떠나면서 끝나지 않고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하며 끝날까? 이는 로맨스 영화를 국가적인 차원으로의 의미를 담은 영화로의 확대를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아내 사토코라는 개인을 미치게 하여 정신병원에 가둔 것은 남편인데, 그 남편은 결국 일본이라는 거대한 전체주의적인 남편이라고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철저히 믿었던 국민을 배반하며 끝나는 영화라는 것이다. 주인공 사토코가 겪는 남편 그리고 국가에 대한 환멸을 마지막 대사 '아주 훌륭해!'로 탄식하며 끝내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 안에서 상영되는 여섯 차례의 영화가 모두 의미가 있다는 해설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으나 GV 후반부의 흐릿한 집중력으로 인해 메모를 하지 못해 여기서 아쉽지만 마치려고 한다. 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져 후기글이 흐지부지된 것도 같지만 어쨌든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이며,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 누군가 이 글을 보고 흥미가 생겨 이 영화를 접하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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