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GV를 장렬히 실패하고 좌절하던 나에게 어느날 온 블로그 알림.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시네마톡"...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 성공할거라는 생각은 안하고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시도했는데,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하던 짬바로 도전했기에 성공했을까. 생각보다는 쉽게(?) 성공해서 자리 잡고나서 한자리 더 잡고자 들어갔더니 시작한지 1분도 안되어 매진. 잡아서 다행이라는 생각 반, 다음 GV 예매는 어떡하지 걱정 반.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왜 이렇게 과열된 느낌일까? 생각해보니 요샌 100인 이상 실내에 모일 수 없기에 97석 정도만 열린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97석과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그리고 이동진 평론가. 3개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이 예매를 어렵게 만들었고, 그렇지만 결국 성공했다는 안도감....(ㅠㅠ)

 

요즘 왕가위 감독님 작품을 4K로 리마스터링하여 개봉한 이후에 영화관에서 <화양연화 리마스터링>과 <해피투게더 리마스터링>을 봤고, 그 다음 <중경삼림 리마스터링>을 보려고 계획을 해왔는데 이 영화를 보고 시네마톡까지 볼 수 있다니 행복했다. 세세히 기록하고 싶어서 듣는 내내 메모했고, 내 주관적인 얘기보다는 평론가님께 들은 이야기의 복기(?)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지만 아무튼 각설하고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뭔가 해설 듣는 내내 생각한 건, 이건 물론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평론가님도 영화 개봉 이후 25년의 세월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이야기하시는 듯 하달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시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다른 날의 갓 개봉한 영화에 대한 GV와는 달리 본인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소회와 이후에 이렇게 리마스터링 판으로 개봉하고 난 후의 시간의 간격을 조심스레 되짚으며 하시는 이야기 같아서 좋았다.

 

반복적으로 해설 중간 중간 '사랑스러운 영화', '왕가위 감독의 다른 영화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는 영화'라고 강조하시던 것과 사람들이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관해 오해하고 있는 '선입견' 등을 차분하게 반박하시며 설명해주셔서 그런 지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항상 그렇듯 영화 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셔서, 영화 안의 여러 장면들을 복기하며 하나 하나 짚어주시는 부분에서 항상 '동진 피셜'이라고 하시고, 관객이 직접 느끼는 것이 맞다고는 하시지만 그 수많은 해설들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은 나 또한 결코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영화를 보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어 기분이 참 좋다...는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며 시작.

 

1. 왕가위 감독이 <중경삼림>을 제작할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

 

1-1. 세번째 영화.

 

왕가위 감독은 <열혈남아>, <아비정전> 이후의 세번째 영화로 <중경삼림>을 개봉하게 되었고, 그 중 <중경삼림>을 통해 거대한 팬덤을 이끄는 감독이 되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수많은 감독들의 소위 '왕가위 스타일'을 이용해 찍은 수많은 아류들을 탄생시킨다. 첫 영화인 <열혈남아>를 만들 당시, 홍콩에서 유행하던 느와르 형사물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두번째로 <아비정전>을 만들었지만 전작에 비해 흥행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궁핍에 이른다. 이때 왕가위 감독 작품에 대해 생긴 영화계 안에서의 수많은 오해들로 인해 본인이 직접 제작사를 만들지 않으면 제작을 해주겠다는 곳이 없어지게 되고, 사실 <아비정전> 다음으로 찍은 영화는 <동사서독>이지만, 이 영화는 중국 본토에서 24개월이라는 시간을 공들여 촬영하고 그 후의 후반 작업까지 너무나 오래 걸렸기에 진행이 지지부진하여 제작사 사무실의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이러한 궁핍한 상황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충족하고자 찍게된 영화가 <중경삼림>이다.

 

1-2. <동사서독>과 정반대의 스타일.

 

사실 <중경삼림>은 <동사서독>과 정확히 반대의 방법으로 촬영된 영화이다. <동사서독>은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로 보일 정도로 세심하게 촬영되었지만,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의 '즉흥성'과 '흘린듯 촬영한 씬'이 특히 빛을 발한 영화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촬영 비하인드를 몰랐던 시절에 처음 이 영화를 보곤 그렇게 찍게된 영화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을 정도로 영화의 완성도는 결코 흘린듯 완성되지 않고 (내 기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1-3. <타락천사>와의 연관성.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할 당시엔 금성무 임청하가 나오는 1부, 양조위 왕페이가 나오는 2부 외에 왕가위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타락천사>에서의 여명 등장 부분이 원래는 이 영화의 3부 격으로 촬영되어 3부작 옴니버스를 기획하였지만 1부와 2부를 완성시켜보니 장편 영화로의 충분한 분량이 되어 1, 2부를 개봉한 것이 <중경삼림>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결국 왕가위 감독의 창작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하셨는데 이유는 왕가위 감독 본인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포기할 때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감독님이라는 것. 사실 1, 2부를 조합하여 만든 영화 / 1, 2, 3부를 조합하여 만든 영화의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인데, 그 중 선택하여 개봉한 것 자체가 왕가위 감독의 창작 스타일 같다는 것이다. (1, 2부만 개봉한 것이 단순 경제적 문제 때문만도 아닐 것이라는 부분도 짚으셨다.)

 

2. <중경삼림> 속 인물에 대하여.

 

2-1. 캐스팅 비하인드

 

원래 <중경삼림>의 주인공 선상에 장국영 배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동사서독>을 찍으며 겪은 여러가지(?)일들 때문에 결국 불발되고, 우연한 자리에서 마주친 금성무의 마스크와 특유의 아이같은 순수함 등이 맘에 든 왕가위 감독은 여러 제약(당시 금성무의 연기력이 좋지 않다는 주위의 평판과 광둥어를 하지 못한다는 언어적인 제약 등)이 있었음에도 금성무를 고집했고, 특히 그를 위해 역할 자체도 전체 대사를 광둥어로 쓰기보다 북경어 또한 쓰도록 바꾸었다고도 한다. (대만과 일본의 혼혈인 금성무를 배려하였기 때문.) 당시 양조위와 임청하 배우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톱스타 반열에 이미 올라있던 인물들이었기에 확신과 신뢰의 캐스팅을 했고, 나머지 금성무와 왕페이 배우는 신인이었으나 후에 이 영화를 통해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2-2. 4인의 캐릭터에 대하여.

 

사실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은 특유의 '이상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편의를 위해 극중 인물 이름이 아닌 배우 이름으로 설명) 등장인물 모두가 뭔가 과도하게 부풀려진듯한 과장된 성격적 면모를 지니는데 이것들이 사실 어떻게 보면 누군가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유치하다던지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가택 무단 침입, 스토킹 등의 범죄적인 모습이라던지의 결핍된 무언가를 갖고 그것들이 과장되어 표현되는데 이것들이 다음에서 언급할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 대한 편견에도 일조하게 된다. 누군가 느끼기엔 극중 양조위가 인형이나 걸레 그리고 비누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거북스럽거나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엉뚱하지만 사랑스럽다는 정반대의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듯 받아들이는 관객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를 두고 평론가님은 '투머치'하지만 '투머치'가 우리를 매혹시킨다고 표현하셨는데 나 역시 이런 부분에 매혹되었기에 공감이 되었다.

 

3.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대하여.

 

3-1. 사람들이 왕가위 감독 영화에 대해 갖는 편견에 대하여.

 

흔히 왕가위 감독 영화를 두고 여러 사람들은 영화가 아니라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듯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여기엔 나도 조금 동의한다. 뭔가 마치 뮤직 비디오가 대부분 그런 것처럼 인상적인 화면 구성과 테마곡에 힘을 강하게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같은 노래의 반복과 특유의 촬영 기법이 이러한 편견을 만드는 듯하다. 이에 평론가님은 사실 오히려 이 영화를 지금 시점(2021)에서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덜 신선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최초•오리지널이고 그 후에 OST를 강조하고, 즉흥적으로 핸드 드로우로 찍은 촬영기법을 쓴 왕가위 아류작이 많이 나왔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영화를 처음 본다면 이런 인상적 촬영 기법이나 테마곡 강조 등의 '왕가위 스타일'이 신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히치콕의 영화를 지금 처음 보면 오히려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들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히치콕 영화가 진부하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 21세기를 살면서 20세기의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는데는 둘 사이의 시차만큼이나 여러 군데 놓인 갭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3-2.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일상 속의 마법을 캐치하는 감독 /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안에는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당사자만이 느끼는 어떤 마법 같은 일상 속의 사소한 사건들이 결국 마법이 된다. 마치 <아비정전>의 첫 장면에서 장국영 배우가 장만옥 배우에게 모월 모일 몇시 몇분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거라는 오묘한 마법 같은 대사로 시작되는 것처럼. 일상적인 순간으로 스쳐지나갈 수 있는 그 1분이 왜 그 상황에서 특별해질 수 있는건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장면 장면에 마법을 부리는 듯한 작법을 구사한다. 물론 어떤 영화는 설득력과 개연성을 꼭 따져서 그것에서 어긋나면 안되고 우연성이 드러나는 순간 치명타가 될 수도 있지만, <중경삼림> 등의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 

예를 들면, 금성무는 첫 씬에서 임청하와 스치고 57시간 후에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식당에서는 왕페이와 스치지만 결국 그녀와는 이어지지 않고 그녀는 6시간 후 양조위와 사랑에 빠지고, 양조위 는 왕페이의 사촌 오빠에게 왕페이가 아닌 메이도 있다며 다른 여자가 있음을 말하지만, 그 메이와는 연결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영화 속의 여러 매혹적인 장면들은 모두 우연의 연속이다. 이러한 영화 속 사소한 일상의 마법, 우연성을 캐치하면 왕가위 영화 안에서의 매력을 더 세세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사건보다 사건 뒤의 추억에 무게를 둠 / 왕가위 감독은 '사랑'과 '사랑이 남긴 추억'이 있다고 할 때, '사랑' 그 자체보다 '사랑이 남긴 것'에 주목한다. 그의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스텝 프린팅'이라는 촬영 기법을 보아도, 이 촬영 기법 자체는 액션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액션'에 집중하기 보다는 '액션이 남긴 흔적'을 보여준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무언가 분절되듯이 화면이 이어지는 듯한 촬영 기법인데, 촬영 후에 장면과 장면 사이에 고의적인 분절을 두어 그 액션이 남긴 흔적에 주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양조위가 왕페이의 종아리를 마사지 해줄 때 '캘리포니아 드림'을 틀어주는데, 이 노래가 왕페이가 두고 간 CD임에도 그 사실을 모르고 전 여자친구가 남기고 간 CD라고 생각하여 전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소개하는 장면을 두고 봐도 사건보다는 사건이 남긴 흔적을 강조함을 알 수 있다.

 

4. <중경삼림> 영화 안의 이야기들.

 

4-1. 홍콩이라는 도시 자체의 특수성.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물씬 느껴진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당대 홍콩 사람들이 느꼈을 불안이 은유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해석을 온전히 모든 영화에서 그렇다고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틀리고 맞고를 차치하고 정치적인 상황을 파고들어 해석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영화이기에 하신 말씀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역사적으로 해석해보자면 결국 이 영화 안에 홍콩의 거리, 홍콩의 낮과 밤을 조명하고 싶었다는 것인데 반환 전의 특유의 모습을 남기고자 했던 왕가위 감독의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셨다.

 

1부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청킹맨션(구룡 반도)에서 찍은 낡고 오래된 듯한 느낌을 남기고자 하였고, (따지자면 홍콩의 밤!) 2부는 홍콩 섬의 세련되고도 우아한 센트럴 지역을 위주로 촬영하여 (따지자면 홍콩의 낮!) 추후에 결국 반환되어 떠나갈 도시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한 것이 아닐까하며, 이를 '홍콩이라는 도시에 대한 거대한 러브레터' 같은 영화라고 설명하셨는데, 이 영화를 보고 유럽 여행을 마치고 로마에서 홍콩을 경유하여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자 아침에 비행기에서 내려 맨 몸으로 역행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힘겹게 올랐던 내 과거 모습이 겹치기도 하여 흥미로웠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출근길엔 하강한다. 코로나 시기가 끝나고 센트럴에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정보였으면.)

 

4-2. 실연으로 인한 고독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사랑스럽다!

 

여타의 왕가위 감독 작품과는 달리 이 영화만의 특수함은 밝고 사랑스럽다는 점인데, 실연 당한 두 남자가 이별을 통해 고독을 느끼지만 결국 고독에서 오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의 정서로 인한 불행을 떠올리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밝고 행복하게 보여진다.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랑이 남긴 추억에 집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 날 것의 대사가 나오고, 너무나 은유적인 대사들이 등장하고, '말도 안돼!', '유치해!' 하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도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왕가위 감독 특유의 연출과 그가 영화화해 낸 여러 장면들이 조화를 이뤄 뻔뻔하지만 사랑스러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냄이 아닐까 싶다.

 

이 외에도 '유통 기한', '시계' 등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지만 1시간 10여분 간의 모든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엔 벅차므로 이만 줄이기로 한다. 이 모든 후기는 평론가님 피셜을 본인의 언어로 옮긴 것으로 당연히 본인이 이해한대로 옮겼기에 평론가님의 의견과 다를 수 있고 개인적인 사족도 들어갔으므로 모든 말들을 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한다는 사족을 덧붙이며 끄읕!

Posted by 디디_d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