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트랜짓 GV를 보면서 생각한 짧은 감상.
1. 우선 프란츠 로고스키 배우의 또 다른 좋은 영화를 GV로 볼 수 있다는 것의 즐거움과 행복감이 몰려왔다는 것.
무려 2018년 11월 21일에 CGV영등포에서 <인 디 아일> 시네마톡 이후로 그의 또 다른 영화를 GV로 만나볼 수 있었던 뜻깊은 날이었다. 당시에도 <인 디 아일> 이라는 좋은 영화를 사실은, 시네마톡 같은 행사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 접하긴 어려웠을텐데 행사가 진행되어 좋은 영화를 알게 되었다는 감상이 제일 컸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코로나19 때문에라도 GV나 시네마톡 등의 행사를 거의 거절하시고 계시다는 평론가님. 그런데도 이 영화를 진행하신 것을 보면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느꼈기 때문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진행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석 간 거리두기, 입장시 온도 체크, 마스크 착용도 철저하게 하면서 조심스럽게 본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아직은... 싶은 분들은 조심스러우실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고 이미 예매해놨던 시네마톡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어서 너무 슬펐는데, 그래도 <톰보이> 이후에는 이런식으로 조금씩 하나씩 진행하고 계신 것 같아서 기쁘다. 별 다른 사고 없이 이런식으로라도 진행되길 바랄 뿐.
2. '와... 어떻게 이런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싶은 느낌에 머리가 띵했다는 것.
보통 어떤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적는다고 할 때 보고 나와서 생각이 드는 몇가지 포인트만 기록해두고, 그 후로는 내가 이런 영화를 봤었나? 하고 잊기 일쑤인데, 이 영화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차근차근 설명하기로.
특히, 이 영화의 메인 테마인 '남겨진 자와 떠난 자'에 대한 해석과 '메타 영화'로의 해석이 너무 너무 너무 인상 깊었다. 또,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기 때문에 책을 읽은 사람들은 비교하면서 볼 수 있을 것이고, 작가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이기 때문에 그 작가가 겪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영화 감상에 들어가기 앞서, 영화 내용 상 역사적인 부분을 모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꽤 있을 것 같아서 간단히만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프랑스 파리와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주로 마르세유에서의 일들인데, 1933년 나치 집권 시기에 전체주의적 사회로 바뀐 독일에서 프랑스로 망명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를 루아르강을 기준으로 북-남으로 나누어, 강 이북은 독일이 점령하고 강 이남은 비독일 통치 지역인 상황이었으며, 당시 유럽에서 소위 나치 독일 하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는 방법 뿐이었다고 한다. 특히, 리스본에서 배를 환승하여 미국이나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으로 망명하는 방법 뿐인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영화에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 언어가 나오는데, 언제 독일어를 쓰는지 언제 프랑스어를 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와닿는 영화가 될 것이다. 보통 한국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이 부분은 놓치기 쉽다만, 안다면 더 많이 보일 것이라고 한다.
또, 이 영화는 원작이 존재하는데 안나 제거스라는 작가가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쓴 <통과 비자>라는 소설이 원작이다. 작가는 초기 공산주의자로, 말하자면 나치의 정반대의 편에 선 인물로, 책은 영화와는 다른 결말이며, 영화가 더욱 더 과감하게 각색을 해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한가지 예로,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영화에서는 초반에 바로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진행 방식이나 결말 등 내용에서의 과감한 각색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이 영화는 "내레이션"이 들어가는데, 이 내레이션 조차도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식당 주인의 시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롭다. 또, 책에서의 공간적 배경이나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고 하면 예전 모습의 건물 등의 모습으로 세트를 구성해서 진행했어야 할 것 같은데, 영화는 현대적인 건물들. 즉, 현재를 배경으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영화적인 작법으로 "시대 착오적임"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세 종류로 분류하자면, 원래 마르세유에 사는 주민들 & 마르세유에 새로온 사람 (주인공 게오르그처럼 프랑스의 적국인이지만 마르세유를 통과해 도망가야 하는 사람들) & 드리스 가족과 같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 이렇게 나뉘는데, 원래 주민들 제외하고 두 사람들의 진행 방향은 정반대이다. 마르세유를 통과해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타지에서 와 마르세유에 남아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 둘의 진행 방향은 반대이면서, 둘의 사회적 지위에도 차이를 갖는다. 둘 다 이방인이지만,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어쩌면 지금도 존재할지 모르는) 사회적인 차별에 관한 유럽 문명을 보여주고자 한 감독의 시선을 알 수 있다.
"노쇠해버린 유럽 문명에 과연 희망이 있는지?"와 "난민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등의 현재 유럽 사회가 갖고 있는 딜레마를 보여주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등장 인물 중 멕시코로 망명하려는 지휘자의 이야기와 드리스 가족의 사건에 주목한다면, 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비자 발급 시스템에 대해서도 배경은 현대적이나, 방식이 결코 현대적이지 않은 번호표 시스템을 갖고 있는 대사관의 일처리 방식을 보면 현재의 사멸해가는 유럽 문명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인 태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의 일에만 집중한다면 주인공의 실존주의적인 물음과 그 안에서의 사랑 이야기로, 자칫 로맨스 영화로만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 큰 틀에서 보면 유럽 문명에 대한 탄식에 기반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사멸해가는 유럽 문명에 대한 깊은 탄식과 남겨진 자와 떠나는 자에 관한 인간의 실존주의적인 물음, 큰 틀에서 보면 이 둘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GV에서 나온 모든 이야기를 다 적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몇가지 이야기들만 적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1. '남겨진 자와 떠난 자 중에서 과연 누가 먼저 잊을 것인가?'
마리, 바이델 (전 남편) 사이의
마리, 게오르그 (주인공) 사이의
마리, 리차드 (의사) 사이의 관계 속에서의 질문.
마리는 남겨진 자이자 떠난 자가 된다.
마리는 세 사람 중 누구를 진정 사랑한 것일까?
'둘 중 더 고통스러운 것을 자처하는 사람'은?
세 사람 간의 사랑에 집중하면서 절박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들의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빠져보는 것도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2. 실존주의적 질문. 머물지 않을 것을 증명(통과 비자)해야 머물 수 있는 곳, 마르세유.
게오르그가 호텔에서 체크인 하는 장면에서 호텔에 머물기 위해선 여기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을 증명하는 서류인 통과 비자를 달라는 말에 머물려면 머물지 않을 것을 증명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맞닿는다.
3. 편지 4통에 관한 이야기 읽혀진 2통과 읽혀지지 않은 2통에 대해서
게오르그가 전달하려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이미 뜯겨진 두통의 편지와 그렇지 않은 두통의 편지가 대조되는데 그 대조되는 내용이 결국 마리의 전남편인 바이델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더이상은 스포가 많아서... 생략)
4. 메타 영화적인 시선에서 영화 해석하기
게오르그에게 자신만의 '이야기'가 생긴 것에 집중하며 영화 감상하기, 이 영화의 각색의 방향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는데 내레이션이 소설엔 등장하지도 않는 식당 주인인 이유는 결국 냉소적으로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만 갖고 마르세유에 당도한 게오르그가 바이델의 작품을 읽고 그의 인생에 스며들면서 또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영화를 보다보면 중간에 대사관이나 비자 심사할 때 대기 장면에서 게오르그 주변의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다 그들만의 이야기를 게오르그에게 계속 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게오르그는 그런 이야기들을 집중해서 듣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은 당신의 사연이 많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 게오르그에게 말하는 것이지만 그때까진 게오르그는 본인의 이야기가 없기에 그런 말들이 주의깊게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고, 본인만의 이야기가 생기고 난 뒤에는 그 이야기를 식당 주인에게 들려주게 되는 것이다.
식당 주인은 그 들은 내용을 토대로 내레이션을 하는데 그게 묘하게 영화 내용과 불일치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게오르그가 느낀 것을 듣고 식당 주인이 말하는 것이기에 완전히 일치하진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게오르그도 자신의 1차적인 경험을 토대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소설의 형태로 식당 주인에게 들려준 것이기에 또 하나의 작가라는 시선에서 본인이 겪은 현실에서 또 다시 문학화한 것을 또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그런 식으로 '릴레이화된 내용의 영화'라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되었다. (동진 평론가님의 해설을 듣고 나서 그런식으로도 볼 수 있구나를 안 것..)
5. 원작 소설과 영화에서의 각색 비교하며 보기
나는 원작 소설인 <통과 비자>를 읽지 않았지만, 소설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 과감히 각색되었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을테니 이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취향 저격하는 좋은 영화를 심도깊은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고, 여기에 글로 옮기지 못한 많은 내용들도 메모장에 기록하여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
특히, <인 디 아일>에서와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 프란츠 로고스키 배우의 호연이 돋보였다. 다른 좋은 영화에서 또 만날 수 있길 바라보며 GV 후기 겸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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