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그저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라는 말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영화 <레 미제라블>에 대한 뒤늦은 후기를 남기려고 한다. 사실 이 영화는 프랑스 관객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 영화(국제 관객을 대상으로 하기엔 친절한 편이 아님.)이기 때문에 한국 관객이 느끼기에 설명이 뒤따라야 하는 부분이 많아 시네마톡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영영 이 영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을 법한 부분을 글로 남겨 오래 기억하고 싶어 후기 겸 시네마톡 진행 중에 언급 되었던 부분들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 영화는 프랑스 '방리유banlieue' 지역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쉽다. 지식 백과에서 발췌한 방리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방리유란 프랑스에서 대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교외 지역을 가리킨다. 행정구역상으로 대도시에 속하지는 않지만 대도시의 생활권에 포함되는 지역이다. 프랑스에서 방리유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산업이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북아프리카와 아랍지역에서 외국인 노동력을 대거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들은 주로 방리유에 거주하면서 집단거주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발생한 경기침체로 수많은 공장들이 부도나고 대량 실업사태로 이어지자, 방리유는 실직한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게 되어 빈민지대로 전락하게 되었고, 주거환경은 갈수록 낙후되고 범죄와 무질서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는데, 그 이유는 방리유에 사는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2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를 말하는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출신의 부모를 두고 있고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누려야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받지 못하고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되면서 교육이나 취업에서 차별을 받았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방리유 [Banlieue] (두산백과))
요약하면 방리유는 프랑스 대도시 근교의 주로 마그레브 지역(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의 이주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슬럼=빈민가로 전락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주 노동자와 원래의 주민들, 프랑스 대도시에서 방리유로 이주하여 정착한 프랑스 인들이 서로 섞여 살면서 일어난 많은 인종과 종교의 차이로 인한 차별 문제가 심각하여 이로 인해 소요 사태가 많이 일어난 곳이다. 이러한 배경에 이해가 선행된다면, 영화 내에서는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만을 설명하기에 관객 입장에서 영화 안에서의 몇몇 장면에 대한 부족한 설명을 보충할 수 있다.
즉, 여기까지 정리된 바를 통해 이 영화를 축약하면 프랑스의 '몽페르메유'라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되기도 한 프랑스 방리유 지역에서 일어난 경찰 3인과 어린 10대 소년들의 대치 상황과 그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감독이 어떤 식으로 풀어가고 있는가에 집중하면 된다.
평론가님이 덧붙여주신 설명에 의하면 프랑스는 우리가 생각할 때 흔히 '톨레랑스'의 나라이기에 자유롭고 관용이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되지만, 실상은 미국과 같은 나라처럼 '자유롭게 분권화'되어 있는 나라가 아닌, '중앙집권화'된 국가주의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박해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억눌린 어떤 것들이 '테러'라는 형태로 표출되어 테러가 유달리 많이 일어나는 나라이기도 하다고 한다.
사실 방리유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엔 프랑스가 출산율이 낮은 나라이기에 생산력 향상을 위해 이민 협약을 맺어 국가에서 주도하여 주로 마그레브 지역의 이주 노동자들을 프랑스에 이주하도록 하여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였고, 비교적 초기인 50-70년대에는 자질도 우세하고 납세액도 높은 비율을 차지할 정도로 초기 이민자 (이민 1세대)들의 대우와 그들의 생활이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 불황이 일고 그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어 이민 2,3세대의 취업이 보장되지 않아 그들의 생활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하였고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들을 임시로 수용하려던 대도시의 근교 지역에 대도시에서 밀려난 프랑스인들과 이주 노동자들 그리고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섞여 살기 시작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흡수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여러 편견과 분노에 의거한 소요 사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평론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러한 상황에서 이민 2,3세대들은 '방은 좁은데 비해 사람은 너무 많아서 거리를 떠돌게 되어' 거리에서 작고 큰 사건에 가담하거나 휘말리게 되는데, 이때 경찰(주로 프랑스 백인)들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여러 인종/종교적 편견에 의해 그들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이주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의심하게 되고, 그러한 와중 발생한 한 사건에 의해 2005년 대규모 소요 사태가 일어나는 등의 국가 안에서 여러 인종이 지속적으로 섞이지 못하고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차용하여 영화적으로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영화 <레 미제라블>이다. (하기 링크의 기사를 참고하면 2005년 프랑스 대규모 소요 사태와 그 이후의 여러 소요 사태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430914.html
프랑스 아랍계 소요…이민자 폭동 또 불붙나
경찰 총맞고 아랍계 사망 그르노블 청년들 방화·시위 내무장관 강경대응 선포 2005년 폭동 재연될라 긴장
www.hani.co.kr
이러한 방리유에 새로 부임한 경찰 스테판 경감(다미엔 보나드)이 부임하면서 몽페르메유라는 도시를 겪은 적이 없는 자의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마치 관객이 그러한 것처럼, 스테판 경감도 이 도시에 대해 겪은 적이 없기에 함께 팀을 이룬 크리스(알렉시스 마넨티)와 그와다(제브릴 종가)가 이 도시의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또한 생소하고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는 계속 기존의 팀을 이룬 경찰들이 그 지역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소개하는데 그때 나의 속마음은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아무리 우범 지역이라고 해도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어린 10대 소녀들 곁에 담배 꽁초가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나의 시선에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여러 행동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관객의 시선을 한 스테판 경감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것이다'라는 의견에 동감한다. 하지만 꼭 그의 시선에 의해서만 극이 진행되지는 않고 각각의 인물이 굉장히 입체적으로 다뤄지는데 하나의 영화 안에 비교적 짧은 시간을 다루지만 꽤나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있음에도 각각의 인물의 서사가 드러난다. 이는 감독이 결코 이 영화 안에 어떠한 무리의 편에 서서 극을 진행한다기 보다는 각각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관객인 나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자처럼 보이는 자에게 더 마음이 갈 수 있으나 최대한 감독은 어떤 이의 입장에도 서지 않은 채로 관객인 나에게 그 판단을 맡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가 결코 친절하지 않고 단 하루 24시간 내에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10대 아이들이 굳이 왜 저렇게까지 하는걸까? 아무리 본인들이 인권 침해를 겪었다지만 본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폭언을 하고 최후에는 엄청난 일격을 가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하지 않나하고 느껴질 수 있으나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따져본다면 그들이 가하는 일격이 대체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폭력이 정당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최초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결국 국가/사회/기성 세대의 책임일 것이기에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 영화 안에서는 프랑스 사회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다루는데 우선 인물들이 어떤 무리를 형성하는지에 따라 특성이 나뉜다.
- 스테판/크리스/그와다 '경찰' 무리
- 뺀찌를 주축으로 하는 '마약상' 무리
- 시장('주민 자치회'장)을 주축으로 하는 무리
- 이슬람의 '종교'적인 베이스를 가진 살라 무리
- 이사를 주축으로 한 '이주 노동자 10대' 무리
한 지역 안에서 여러 무리들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되 각자의 영역을 형성하며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가끔은 뭉치기도 하고 대치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온 서커스 군단의 어린 사자가 사라지면서 이 사자의 행방을 쫓다가 생긴 또 다른 사건이 '우발적'이라기 보다는 '언젠가는 터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이 되면서 영화는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 영화 안의 어떤 단면적인 다뤄진 것들만 보고 영화 안에서의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 감독이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각각의 무리가 단순하게 한쪽이 선이고 한쪽이 악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들이 쌓인 상황에서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과연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에 대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계속 복잡하고도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기는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약간의 희망을 찾아본다면 종교적 베이스를 가진 '살라'가 범죄자에서 갱생하여 다른 어떤 무리들보다 아이들의 편에 서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장면과 스테판 경감이 지역을 이동하여 방리유 지역 안에서의 실상을 본인이 직접 겪고 (사실 지역 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몰랐을 수도 있는 일) 조금이나마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절망 속에서의 약간의 희망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시네마톡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해설은 서커스단이 잃어버린 새끼 사자는 결국 10대 소년 '이사'의 은유라는 것이었다. 이사는 새끼 사자인데, '새끼라는 것에 집중하는 바람에 사자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경찰은 이사라는 새끼 사자를 훔친 것이고, 과연 이 훔친 새끼 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관객들과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점이 가장 인상깊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빅토르 위고가 말한 '나쁜 농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경각심을 갖고 언제나 의심하며 살아가자는 개인적인 교훈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영화와 좋은 해설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부모도 아니고 직업적으로 교육자도 아니지만 스스로의 인생 안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약자와 차별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던 좋은 영화를 발견한 것 같아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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